[역경의 열매] 박종호 (2) 나는 ‘서자 중의 서자’… 예수님 계보가 은혜로워

혈통을 떠나 주님 일꾼으로 쓰여 감사… 배다른 형제자매들 만나 서로 위로

[역경의 열매] 박종호 (2) 나는 ‘서자 중의 서자’… 예수님 계보가 은혜로워 기사의 사진
박종호씨가 1964년 2살 생일 기념으로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그는 “어릴 때는 얼굴빛이 새카맣고 비쩍 마른 편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머니 방순옥 여사는 이북 출신으로 대한민국 경찰 창설 이래 초창기 교통경찰을 했던 분이다. 얼핏 보면 서양인처럼 착각할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이었다. 그래서 본인보다 6살 연상이었던 아버지가 적극 구애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박민택 선생은 일본 오사카외국어대 영문과를 졸업해 미군정 시기 미군부대 소속 치안국 수사과에서 통역관을 지낼 정도로 영어에 능통한 분이었다. 이후 서울사범학교 영어교사를 지냈고 서울 배문고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어릴 적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아버지는 미국 잡지 뉴스위크를 보며 내게 정치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아버지 역시 어머니만큼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었다. 비상한 머리에 잘난 외모까지 겹쳐 뭇 여성의 인기를 한몸에 받은 모양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와 만나기 전 2번의 결혼을 했다. 첫 번째 부인은 서울사범학교에서 만난 동료교사였다. 두 번째 부인은 치안국 수사과 활동 시절 만난 경찰이었는데 어머니의 직장 상사였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버지 때문에 생계는 온전히 어머니 몫이 됐다. 결혼 후 경찰 일을 그만둔 어머니는 밤늦도록 구슬 꿰기, 봉투에 풀칠하기 등 여러 일을 하며 가계를 꾸렸다. 집안 형편이 유복한 편은 아니었으나 살뜰히 살림을 돌본 어머니 덕분에 구김살 없이 자랐다. 고생하며 모은 돈이었어도 내게 쓸 때는 통 크게 지출했다. 어머니는 딱지 하나를 사줘도 청계천 도매시장에서 박스째로 사주시는 분이였다.

아버지는 돈이 생기면 집을 나가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어머니는 종종 ‘너만 아니면 이혼했다’고 쓸쓸히 말하시곤 했다. 이 말을 들을 당시엔 아버지의 빈자리가 커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어머니 외의 여성과 가정을 꾸렸고 자녀까지 여럿 뒀다는 건 결혼할 때 알았다. 23살 아내와 결혼하고 혼인신고를 하려는데 외동아들인 나와 어머니 외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호적에 올라와 있었다. 부인은 2명 더 있었고 자녀도 5명이나 있었다. 그길로 아버지에게 달려가 따져 물으니 ‘입양한 아이들’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입양했다는 자녀 중 첫째 아들이 이듬해 미국에서 차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오열하는 것을 보며 직감했다.

‘호적에 적힌 이들은 입양한 자녀가 아니구나. 내 배다른 형제자매다.’

속은 것에 대한 배신감에 앞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 엄습했다. 하지만 외동아들로 외롭게 자란 내게 형제자매가 있다니 한편으론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이들을 처음 만난 건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첫째 부인의 자녀 둘이 사는 곳을 수소문해 이들과 만났다. 이들은 아버지에게 내 소식을 접했다며 반갑게 맞아줬다. 이때 우리는 같은 아픔을 가진 형제자매로 서로를 따뜻하게 위로해줬다. 국내에 살던 두 번째 부인의 자녀도 이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이렇듯 ‘서자 중의 서자’인 나는 성경 속 예수의 계보가 얼마나 은혜로웠는지 모른다. 예수님 역시 순수 혈통으로만 이뤄지지 않았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솔로몬, 이방 여인의 후손이 이어져 주님이 태어났다. 나란 사람이 나고 자라 주님의 일꾼으로 쓰이는 지금까지의 삶을 ‘은혜’란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유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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