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한승주] K팝, 스피크 유어셀프 기사의 사진
최근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나온 영상을 찾다가 ‘뮤직뱅크 인 베를린’을 보게 됐다. 지난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KBS 음악방송 ‘뮤직뱅크’ 영상이다. K팝 가수들이 유럽에서 한국어로 된 노래를 하는데 외국 팬들이 이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눈물을 흘린다.

엑소나 워너원같이 월드투어를 하는 그룹뿐 아니라 데뷔한 지 1년도 안된 신인그룹의 노래와 춤까지 따라 하는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오직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시리아에서 유럽에 처음 왔다는 소녀들, 공항 입국장에 하염없이 진을 치다가 기다리던 스타가 자기 앞을 지나가는 순간 기쁨에 오열하는 팬들. 무엇이 이들을 K팝에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본인도 어리둥절할 정도의 글로벌 인기를 얻은 후, K팝은 잠잠한 듯 보였다. 그러다가 방탄소년단(BTS)으로 폭발했다. ‘제2의 비틀스’라 불리는 7명의 소년들은 K팝의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외국어 노래에 인색한 미국인들의 심장을 흔들며 올해 두 번이나 미국 빌보드 차트 200 1위에 올랐는데, 이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에 비견되는 성과다. 일본 정계의 혐한 감정도 도쿄돔을 가득 채운 팬들을 막진 못했다.

그렇다면 K팝의 글로벌 인기 요인은 무엇인가. 우리보다 그 이유가 더 궁금했던 미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K팝, 세상을 설명하다’를 참고해볼 만하다. K팝 스타로 불리는 아이돌 그룹은 거의 유례없는 방식으로 기획된다. 오디션과 길거리 캐스팅을 거쳐 실력과 비주얼이 되는 사람을 골라낸다. 어린 나이에 선발된 이들은 오랜 기간 연습생 생활을 거치며 보컬 랩 춤 트레이닝을 받는다.

마침내 각 개성을 골고루 담은 그룹이 탄생한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에 능통한 멤버들이 모여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 놀라운 것은 꽤 많은 곡이 아예 외국인의 손에서 나왔다는 점. 일례로 레드벨벳의 ‘빨간 맛’은 스웨덴 작곡가가 유럽 걸그룹을 주려고 만들었던 슬픈 이별곡이었는데, 기획사의 편곡으로 경쾌한 여름 곡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대부분의 K팝에는 요즘 유행하는 랩 힙합 록 EDM 등 여러 장르가 한꺼번에 들어가 있다. 후렴구엔 귀에 쏙쏙 박히는 영어 가사도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BTS가 세계적으로 우뚝 선 이유는 무엇일까.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무대에서 차원이 다른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 이외도 BTS는 가사에서 차별화된다. 예전 ‘서태지와 아이들’을 연상시키듯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반항, 지친 청춘에 대한 위로,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격려의 메시지가 담겼다. 지방 출신 젊은이들이 이른바 3대 기획사가 아닌 신생 기획사에서 기존 아이돌 문법과는 다른 자기들만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방탄’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회적 편견과 억압이라는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 BTS는 자신들의 세계관을 스스로 가사로 써 내려간다. 실제로 유튜브 영상 속 해외 팬들은 “BTS가 나를 구했다. 힘든 시기에 그들의 음악이 힘이 됐다”고 말한다. 자신이 사회의 비주류라고 생각하는 전 세계 많은 젊은이의 마음을 위로한 것이다.

앞으로 K팝이 잘 만든 기획사의 수출상품에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도약하려면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찍어낸 듯 비슷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는 K팝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무한 경쟁에 내몰리며 인생의 초반에 벌써 지친 우리 청춘들이 새겨봐야 할 메시지이기도 하다. BTS 리더 RM이 유엔 연설에서 얘기한 ‘스피크 유어셀프(Speak Yourself)’처럼. “무엇이 당신을 설레게 하고 심장이 뛰게 합니까. 여러분의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이름을 목소리를 찾으십시오.”

한승주 편집국 부국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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