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법] 날로 먹는 자서전 기사의 사진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을 적은 목록을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고 한다. 옛날에 죄수 목에 올가미를 두르고 양동이(bucket) 위에 올라가게 한 후, 양동이를 걷어차서 교수형을 집행한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의 버킷리스트를 보면, 살면서 ‘책 한 권 이상 출간하기’가 많다고 한다. 전문작가가 아닌 일반인이 글을 써서 책을 낸다면 대개 수필집이나 자서전일 것이다. 그런데 재주가 있든 없든 글을 쓴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힘든 일이다. 머리를 쥐어짜도 한 줄도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글 쓰면서 출산의 고통을 어렴풋이 느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일까.

한 번 원고 청탁받고 글 쓰는 것도 고역인데, 책을 출판할 정도라면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또한 책을 펴낸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럽지만 엄청난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1만8000명의 변호사가 가입되어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이 소화하는 일정은 거의 매일 살인적이다. 이런 일정 속에서 한 권의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필자는 최근 책 출간하기라는 버킷 리스트를 너무도 손쉽게 달성하였다. 살면서 느끼는 것인데, 인생의 많은 해법을 지인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발견하곤 한다. 이미 출판이라는 버킷 리스트를 달성한 절친한 선배, 박물관 학예사를 하는 분과 만나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책 출간이 화제가 되었다.

필자가 책을 내고 싶은데 시간이 없음을 한탄하자 두 분께서 색다른 저서의 출간을 권유하였다. 평소 사람들과 소통 잘하고 인맥이 넓으니 지인들의 필자에 대한 평가를 모아 책을 내 보라는 것이다. 본래 자서전은 본인이 쓰는 것이지만, 때론 전문작가가 본인이 말하는 것을 정리하여 발간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역시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나의 스승인가 보다.

그러나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법. 누구에게 부탁을 해야 할지. 부탁을 한다면 들어줄지. 바쁜데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 고민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용기를 내 연락을 했다. 놀라운 것은 원고 청탁을 받은 모든 분들께서 기꺼이 승낙하셨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부탁한 것을 고마워하기까지 하셨다. 오십 평생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했다. 글자 수나 형식의 제한 없이 필자와의 추억이나 필자에 대한 생각을 글로 써달라고 지인들에게 부탁하였다. 친구나 동료를 비롯하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무실 비서와 운전기사, 심지어는 25년 동안 머리를 만져주신 미장원 원장님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로부터 글을 받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책 한 권이 뚝딱 만들어졌다. 너무 쉽게 한 권의 책이 만들어져서 날로 먹는 자서전이라고 농담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필자의 머릿속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던 역사적 사실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선명히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보니 잊고 지내던 시절이 공백 없는 퍼즐처럼 맞춰졌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주위에 계신 많은 분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사는 법을 실천하면 버킷 리스트 하나가 너무나 손쉽게 달성된다는 것을 많은 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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