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호 (7) 경연대회서 대상, 전업 복음성가 가수의 길로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 아내 말에 서울시립합창단 그만두고 솔로앨범 발매하자 폭발적 반응

[역경의 열매] 박종호 (7) 경연대회서 대상, 전업 복음성가 가수의 길로 기사의 사진
박종호 장로가 1987년 극동방송이 주최한 제6회 복음성가 경연대회에서 참가곡 ‘내가 영으로’를 부르고 있다.
결혼 후 신학원에 다닐 무렵 성악과 선배로부터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을 소개받았다. 믿을만한 선배의 추천이었지만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름부터 ‘전도단’이라고 하니 이단 종파 같아 거부감이 들어서였다.

계속된 선배의 권유에 못 이겨 아내와 함께 화요모임에 갔다. 도착해 보니 청년들이 여기저기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찬양하고 있었다. 예배 방식도 신선했다. 찬양으로 시작해 찬양으로 끝났다. 설교는 예수전도단 설립자인 오대원(David Ross) 목사가 했는데 듣다보니 가슴을 울리는 감격이 느껴졌다. 나도 청년들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펑펑 울었다. 사랑하는 하나님만 평생 찬양하며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화요모임에서 예배하며 해외 선교에 대한 꿈을 꾸고 있을 무렵 첫째가 태어났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족을 건사하는 것도 절실한 일이었다. 찬양에 몰두하는 내게 대학 동기들이 서울시립합창단에 원서를 함께 내러 가자고 권했다. 안 간다고 했더니 나 대신 원서를 제출해줬다. 그 덕에 나는 1985년 서울시립합창단원이 될 수 있었다. 예수전도단을 소개해 준 선배가 미국 유학을 가게 되면서 본인이 가르치던 학생들을 보내줘 레슨도 하게 됐다.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도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평생 선교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었다.

하루는 대학 동기인 최덕신 전도사가 극동방송 제6회 복음성가 경연대회에 출전할 것을 권했다. 최덕신은 대회가 열린 87년에 졸업 후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이미 85년부터 전국을 다니며 찬양사역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86년 예수전도단에서 찬양사역자 최인혁 전도사와 듀엣으로 앨범을 낸 경험이 있었다. ‘한국의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란 콘셉트로 찬양앨범을 제작했는데 청소년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반응이 뜨거웠다.

경연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하자 최덕신은 나를 위해 ‘내가 영으로’를 작곡했다. 나는 이 곡을 참가곡으로 선택해 대회에 참가했다. 본선은 평소 다니던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덕분에 떨리진 않았지만 가사를 잊을까 걱정돼 무대 저편을 바라보며 찬양을 불렀다. 처음 화요모임에 갔을 때 들었던 느낌, ‘하나님이 찬양을 기뻐 받으신다’란 생각이 스쳤다. 곡을 마치자 객석에서 큰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결과는 대상이었다.

이 상은 나를 전업 성가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최덕신의 권유도 있었지만 아내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음대 지망생 레슨과 서울시립합창단원으로 소득이 안정돼 있는데 당시로서는 개념도 생소한 찬양사역을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자 아내는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자”고 말해줬다.

무슨 용기에서 한 얘기인지 모르겠으나 아내의 이 말을 계기로 모든 일을 그만두고 솔로앨범을 준비했다. 최고의 실력가와 함께 최고의 음악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가진 돈의 10배 정도 예산을 잡고 제작했다. 88년 발매된 1집 ‘살아계신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클래식하면서도 팝적 요소를 지닌 찬양곡을 내놓자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기독교서점들에 이 앨범을 찾는 요청이 꽤나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성원으로 1~2년 뒤엔 일반 음반 매장에서도 내 앨범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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