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홍식] 민주주의의 위기 : 노란 조끼 vs 마크롱 기사의 사진
집권 1년 반 만에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정권이 최대 정치 위기를 맞았다. 환경 보호를 목표로 정부가 유류세 인상에 나서자 전국에서 교통을 막고 시위를 벌이는 저항운동이 들불처럼 번졌기 때문이다. 비닐로 만든 형광색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대는 지난 4주간 토요일마다 전국 주요 도시에서 거리를 점령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폭동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뒤늦게 유류세 인상을 백지화하고 민심 달래기에 나섰지만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수십만에서 100만명을 넘는 거대한 시위가 드물지 않은 프랑스에서 노란 조끼가 동원한 시위는 10만~20만명 규모로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노란 조끼의 동원과 시위가 순전히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형식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정당이나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 기존의 조직이 주도한 게 아니라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집단저항을 이끌어냈다는 말이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라는 현상은 흥미롭게도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마크롱은 2016년 소수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새로운 정치를 펴겠다고 나섰고, 2017년 4~5월 대선에서 기존 정당의 후보들을 모두 누르고 당선하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이어 6월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전진하는 공화국’이라는 정치세력을 만들어 절대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선거 혁명을 이뤄낸 바 있다.

하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성공은 실패의 씨앗을 안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크롱은 대통령 당선과 의회의 절대다수 세력 확보를 통해 국민의 확고한 지지와 위임을 받았다고 자부했다. 그는 로마 신화의 으뜸 신 주피터와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표했다.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나라를 힘차게 이끌어가겠다는 포부였다. 그는 노동과 철도 부문 개혁을 주도했고, 첨단 산업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혁신 프랑스를 만들겠다고 열심히 뛰었다.

그 과정에서 마크롱과 ‘전진하는 공화국’은 국민의 소리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않았고 시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실패했다. 이번 노란 조끼의 반란은 유류세 인상이라는 어쩌면 작은 정책에서 시작됐다. 작지만 대중의 폭발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도화선이 됐다. 왜냐하면 노란 조끼의 삶은 매달 15일부터 집세, 관리비, 수도세, 전기세, 보험료, 기름값을 제하고 나면 먹거리를 장만하는 것조차 수월하지 않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업자나 극빈층은 아니지만 힘겹게 살아가는 중산층이라는 말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75%가 노란 조끼의 반란을 지지한다. 심지어 12월 초의 시위가 폭력으로 물든 다음에도 이런 지지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는 아니다. 그만큼 생계형 저항과 반란에 대해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의미다. 마크롱은 젊었을 때 로칠드 은행에서 일한 금융가이기 때문에 ‘부자들의 대통령’으로 통한다. 게다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국민과 소통하기보다는 오만한 엘리트의 태도를 보여준 것으로 비쳐 왔다.

프랑스 현대사 전문가 피에르 로장발롱 교수는 마크롱의 위기를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정치적 정당성만 믿고 도덕적 정당성을 무시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그는 21세기 사회에서 위정자의 도덕적 정당성이란 상시적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호흡하면서 정책을 설명하고 충분한 지지를 도출해내야 하는 의무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2017년 마크롱의 당선과 총선 대승이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열었듯 2018년 노란 조끼의 반란은 새로운 사회의 시대를 반영한다. 마크롱이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기존의 정치세력을 순식간에 날려버리고 새로운 세력을 만들었듯 노란 조끼들은 기성 노조와 시민단체를 믿을 수 없다고 외면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노란 조끼는 조직도 전략도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일시적 조합이다. 그만큼 마크롱 입장에서는 대처하기가 어려운 사회의 반항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프랑스 정치의 새로운 전개가 민주세계의 관심을 끄는 이유다.

조홍식(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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