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흔들리는 촛불 기사의 사진
개헌에 이어 선거제도 개혁마저 무산될 조짐에도
촛불혁명 파수꾼 자처하는 민주당은 기득권 지키기에만 급급
개혁이 줄줄이 지연 또는 좌절되는 상황에서
촛불이 늘 민주당 편일 거라는 생각은 오산


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은 단명했다. 압도적 국민 지지로 탄생한 정권이었으나 채 1년을 버티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은 1960년 7·29 총선(민의원)에서 전체 233석 가운데 175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반면 나는 새도 떨어뜨리며 절대 권력을 누렸던 이승만의 자유당은 겨우 2석을 얻는 데 그쳐 궤멸했다.

5·16 군사 쿠데타로 무너진 제2공화국 실패 원인을 모두 쿠데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혁명 이후 한껏 높아진 국민의 기대치를 민주당 정부가 충족시키지 못한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해묵은 신·구파의 극심한 대립 속에 민주당 정부는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온 개혁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다. 민주당 정부가 국민 요구에 부응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군홧발에 짓밟히지는 않았을 거다.

문재인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임을 자랑한다. 촛불혁명은 ‘이게 나라냐’는 물음으로 출발했고, 문재인정부는 ‘이게 나라다’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가장 먼저 구질서, 구체제의 모순이 줄줄이 수술대에 올랐다. 새살이 돋으려면 곪은 상처는 과감하게 도려내는 게 옳은 수순이다. 문제는 수술의 속도만큼 새살이 돋아나지 않는 데 있다.

문재인정부는 적폐청산 토대 위에 촛불 정신을 계승하는 국가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치 개혁, 검찰 개혁, 사법 개혁, 국정원 개혁, 노동 개혁, 재벌 개혁 등등. 그러나 구호만 거창했지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뚜렷한 결실을 맺은 게 없다. 지금 추세로는 문재인정부 집권 기간 내내 말잔치만 요란하다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촛불의 완성이라던 개헌도 시늉에 그치고만 상황에서 개혁을 기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개헌이 좌절되면서 촛불은 의미를 상실했고, 설상가상 모든 경제지표가 하락하면서 촛불은 급속히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국민들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여러 분야에서 변화와 개혁의 물결이 거세게 일 것으로 기대했다. 혁명은 구질서와 구체제를 거부한다. 하지만 남북문제를 제외하면 국민 피부에 와닿는 변화는 거의 없다. 그중에서도 변화와 개혁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큰 곳이 국회와 정치권이다. 촛불로 바뀐 건 행정권력일 뿐 의회권력은 구체제, 구질서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개헌에 이어 선거제도 개혁마저 무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헌이 국가의 기본 틀을 재정립하는 작업이라면 선거제도 개혁은 정치의 기본 틀을 새로 짜는 작업이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요구하는 연동형 비례제도는 국민으로부터 받은 지지만큼 의회권력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촛불의 물음에 문 대통령이 ‘이게 나라다’라고 내놓은 답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문 대통령이 내놓은 답에 부합하는 제도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시큰둥하다. 손해 보는 장사는 할 수 없단다. 한 치의 기득권조차 내놓으려 하지 않으니 개혁이 될 리가 없다.

새해 예산 통과 과정은 또 어떤가. 민주당은 자유한국당과 밀실거래로 예산을 나눠먹고, 그것도 모자라 깎아야 마땅할 의원 세비를 올렸다. 이런 꼴을 보려고 국민들이 촛불을 든 게 아니다. 말끝마다 촛불 들먹이며 개혁의 파수꾼을 자처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영락없이 ‘반촛불적’이다. 지금의 민주당은 촛불 정신을 계승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알량한 지지율에 도취해 기득권에 집착하다가는 민주당 또한 촛불과 맞닥뜨리는 날을 맞을지 모른다.

“박근혜 때가 나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며칠 전 우리 정부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결정과 관련해 했다는 말이다. 요즘 주변에서 종종 듣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아베로서는 문재인정부가 한·일 정부 합의사항을 뒤집은 거니 욱할 만도 하다. 주변의 대정부 비판도 이해는 간다. 당장 힘들다는 아우성이다.

개혁은 아프다. 구성원의 100%를 만족시키는 개혁은 없다. 한쪽에서 적폐청산의 피로도를 토로하면, 다른 한쪽에선 개혁의 역주행을 비판한다. 양쪽 틈바구니에서 문재인정부의 개혁이 지향점을 잃은 게 아닌지 우려된다. 이쪽저쪽 비판과 훈수 속에 경제정책은 이미 죽도 밥도 아닌 선밥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소득양극화와 사회양극화는 더욱 심화됐다. 경제상황은 악화되고 딱히 나아진 것도 없는데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20년 집권’ ‘50년 집권’을 이야기한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해놓고 그런 얘기를 하면 덜 민망하겠다. 촛불이 늘 민주당 편일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논설위원 hwle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