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장희] 정부 말 믿은 바보의 혼잣말 기사의 사진
고3이던 1988년에 재학생들은 과외나 학원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형편이 어렵진 않았지만 부모님과 나에겐 정부가 금지하는 일은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었다. 졸업 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좀 산다는 친구들이 왜 그리 수업시간에 졸았는지를. 아버지가 공무원이던 친구가 제일 열심히 과외를 받았다는 말을 듣곤 부모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97년 1월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힘들었던 기자 1년차 시절 가끔 만났던 학교 후배들은 위로이자 낙이었다. 그때 후배 한 명이 바트화 폭락으로 시작된 동남아 외환위기가 우리나라로 전이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쏟아냈다. 기자밥 좀 먹었다는 나는 당시 경제팀의 ‘강한 펀더멘털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걱정 말고 취업 준비나 해”라고 타박했다. 그해 겨울 채용 공고는 자취를 감췄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던 한 후배조차 발령이 유보됐다.

2002년 아이가 생기면서 서울 신혼집을 정리하고, 신도시에 살던 처가 근처로 이사를 했다. 전세였지만, 내 집 마련은 그리 먼 꿈은 아니었다. 그런데 집값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하나 마나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대통령이 바뀌었다. 노무현정부는 강력한 세금정책을 예고하면서 “집값이 곧 안정된다” “부동산 버블은 꺼진다”며 호언장담했다. 지금 집을 사면 후회할 것이라고도 했다. 집값 올랐다는 자랑이 듣기 싫어 친구들 모임에도 안 나가면서 버텼지만 결국 노무현정부 말기에 빚을 잔뜩 안고 아파트를 장만했다. 스트레스를 계속 받느니 차라리 ‘하우스 푸어’의 길이 낫겠다 싶었다. 집을 장만한 다음해 정권이 바뀌었고, 거짓말처럼 집값은 곤두박질쳤다.

2018년 아이가 고등학생이 됐다. 30년 전 학력고사를 봤던 나에게 지금의 입시 제도는 그 자체로 시험문제다. 정말 잘 모르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부의 조변석개식 대입 정책 탓에 현재 고3부터 중3까지 각각 다른 방식의 입시를 치르게 됐다는 기사를 접하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정부는 입만 열만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고, 찬성하는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찾기 힘든데도 사교육 시장이 계속 커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모르고 불안한 데다 학교 선생님도 못 미더우니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 수능을 강타했던 국어 31번 문제와 관련해 수능본부장은 “앞으로 초고난도 문항 출제는 지양하겠다”고 했다. 이 말을 믿는 수험생이나 학부모는 거의 없다. 상위권 학생들에게 국어 31번과 같은 문제가 수능 대비 옵션으로 추가됐을 뿐이다.

내가 살면서 겪은 일들은 나에게만 특별히 일어난 일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잘 살고 싶어 했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과 좌절을 경험했다. 그사이 굳어져간 정부와 공직자에 대한 이미지는 이렇다. 위기가 닥쳐도 위기인 줄 모르고, 위기임을 알아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먼저 찾는다. 투기꾼과 싸워 이길 능력도 의지도 없다. 이익이 된다는 판단이 들면 거리낌없이 자신들이 만든 원칙과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

갈수록 정부가 만든 법과 원칙이 순진하거나 그럭저럭 사는 사람들만 지켜야 하는 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잘나가는 고위 공직자, 심지어 법관도 법과 원칙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각종 정책이 나와도 약효가 잠깐 뿐이고, 오히려 각종 편법으로 부나 명예를 쌓아올리는 것이 능력이라고 평가받는 세상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기관장과 장관 등과 함께 제3차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열었다. 사회 전반에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더욱 노력해 나가자는 게 결론이었다. 회의장에 모여 있던 장관과 기관장들이 과연 반칙과 특권 없이 그 자리까지 올랐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장희 사회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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