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공권력 사이… 경찰의 ‘물리력 행사 기준’ 딜레마 기사의 사진
경찰이 노사분규 등 분쟁현장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에 대처하기 위한 ‘물리력 행사 기준’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2일 유성기업 노조원들의 임원 집단폭행 사건 당시 경찰의 소극적 대응에 비난이 쏟아진 것에 대한 후속조치 성격이 짙다.

관건은 불법행위를 차단하는 과정에서 테이저건 등 장구를 사용한 강경 진압을 허용할지 여부다. 경찰 안팎에서는 “공권력 강화를 위한 지침을 기준에 꼭 반영해 달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현 정권의 정책방향에 맞춰 ‘인권’을 최우선 기치로 내건 경찰 지도부가 스스로 공권력을 약화시켰다는 지적과 함께 물리력 행사 기준을 통해 경찰력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해 9월 경찰청은 ‘평화적 시위는 미신고 등 사소한 불법성향이 있더라도 경찰력 행사를 자제하라’는 경찰개혁위원회 권고안을 그대로 수용했다. 경찰이 강경 진압을 하지 않으면 시위대 역시 비폭력 시위를 할 것이라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과거에는 불법 점거가 발생하면 경찰이 시설주와 먼저 접촉해 보호의 필요 여부를 물었고 요청 시 적극진압에 나섰다”며 “지난해부터는 시설주와 먼저 접촉을 하지 않고 보호 요청이 있어도 점거가 폭력 사태로 이어지지 않으면 당사자끼리 협의하도록 기다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올해 민주노총이 대검찰청,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지역구 사무실, 한국GM 사장실 등을 불법 점거한 사례만 10여건이 넘지만 경찰이 적극적으로 퇴거 조치를 하거나 입건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찰청에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으로 사법 처리된 인원은 지난해 1440명으로 2016년(4391명) 대비 58% 감소했다. 또 지난해 불법 폭력시위로 적발된 사례는 12건으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약 35건이 적발된 것과 비교하면 60% 이상 줄었다.

전문가들은 공권력 회복을 위해서 경찰이 원칙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12일 “경찰의 치안 업무는 정권의 변화나 지도부 교체와 상관없이 일관성 있게 유지돼야 한다”며 “평화로운 집회와 시위를 보장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조금이라도 불법행위가 감지된다면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공권력을 남용해온 경찰에게 강력한 대처를 허용하기 어렵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유남영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장은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이나 용산참사처럼 경찰이 공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가슴 아픈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인권이라는 가치가 경찰의 직무 수행과정에서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일부 사건만 보고 경찰의 공권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앞서 진상조사위는 백 농민 사건, 용산참사, 쌍용차 파업 사태 당시 경찰이 과잉 대응을 해 인권 유린 사태가 벌어졌다며 경찰에 사과와 국가손배소 취하 등을 권고했다. 경찰은 백 농민 건에 대해서는 사과했고 용산참사와 쌍용차 사태에 대해서는 사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현재 경찰의 물리력 행사 기준 관련 연구용역 결과는 이미 나온 상태로 인권 영향평가 등이 진행 중이다. 이르면 이달 안에 확정해 현장에 적용할 방침이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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