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이경원] 빚투 기사의 사진
계좌는 열고 통장은 만드는데, 마이너스통장이란 뚫는 거구나. 서류만큼 꼼꼼한 표정의 은행원 앞에서 빚을 지면서 나는 철없게도 유전지대에 시추공을 꽂는 장면을 상상했다. 김이 나다 이윽고 원유가 콸콸 솟구치는 광경을 그리면, 소득증명원으로 인생을 채점 받는 순간에도 괜히 안도감이 드는 것이었다. 급한 불을 끄면 후배들에게 술도 사리라…. 뚫린 건 돌파구가 아니라 신용이었다. 검은 빛으로 떠오른 건 원유가 아닌 미래였다.

문자메시지로 차용증이 몇 번이나 날아온 뒤에야 가슴이 철렁했다. 잔액과 이자가 얼마, 고객님 주소나 연락처가 바뀌면 콜센터로. 천년의 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게 실수로 열어둔 작은 쪽문 하나였다 했던가. 구멍은 금리에 기간을 곱해 점점 커졌고, 점잖은 은행도 오스만 술탄의 군대보다 무서웠다. 빚은 지는 것일 뿐 이기는 게 아니었다.

문학이란 누군가가 여행을 떠나거나 마을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톨스토이가 말했다. 알량한 경제 기자 경험으로 대문호를 흉내 낸다면, 만사가 빚을 지거나 빚을 갚는 이야기다. 후대에 채무를 넘기는 국민연금이 시끄럽고 가계빚이 1500조원을 넘긴 시대에 틀린 말은 아닐 테다. 빚은 금융과 무관한 곳에서도 온갖 걸 표현한다. 소설가 은희경이 천명관에게 건넨 찬사는 “동시대 소설에 빚진 게 없다”는 것이었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서울대 철학과의 이명현 교수는 퇴임 때 “각주 없는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물론 밀알 같은 빚도 있다. “반도체만큼은 꼭 살려야 합니다.” 반도체 강국이 있기까지는, 금융 당국이 은행 간부들을 모아두고 “지원을 합의하지 않으면 아무도 못 나간다”며 문을 잠근 역사가 있었다.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대개 젊은 시절 벤처캐피털 앞에 고개를 숙인 경험을 갖고 있다. 비올 때의 우산, 희망 홀씨, 햇살…. 어떤 빚은 이름부터 사람을 살린다.

하지만 빚이 빛나는 순간은 사라질 때다. 변제되지 못한 빚은 공적자금이나 무수익여신, 차관 같은 거창한 이름이 아닐수록 무겁다. 2500만원을 독촉 받던 한 30대 여성은 2살 4살 아들의 얼굴을 종량제 쓰레기봉투로 눌렀다. 두 아들을 양 옆에 눕히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정신을 잃은 채 발견돼 감옥에 갔다. 일감이 끊긴 한 화물차주는 트럭에 번개탄을 피웠다. 할부금을 제때 못 내던 그는 빛이 아닌 빚 안에서 눈을 감았다.

“지난한 수사 끝에도, 결국 절반의 정의 아닐까요.” 한 검사는 재산형이 확정돼도 실제 징수되는 벌금과 추징금 등이 50% 남짓이라며 씁쓸해했다. 가수의 아버지가, 배우의 어머니가…. 번지수 틀린 ‘빚투’가 지속되는 데에도 이유는 있다. 철 지난 진실과 사과론 뚫린 가슴을 화해시키지 못한다는 분노다. 그런데 신의칙은 연예인이나 소시민끼리의 얘기일까. 국가는 빚투에서 자유로울까.

70년대에 고려대를 다닌 한 장년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고, 언젠가 쓸쓸히 말하던 판사가 있었다. ‘유신독재 타도’ 유인물을 뿌린 옛 고대생이 빼앗긴 청춘을 추심하려던 날짜는 재심 무죄 확정일로부터 6개월이 넘게 흘러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민법 제166조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리기 전이었다. 그 판사는 “대법 판례대로 했다”고 말했다. “3년은 넘기지 않았더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어쩔 수 없이 소송을 물리치면서 그는 잠시 인생을 생각했다고 한다. 수십년 과거사를 손해배상 청구서로 적어온 이나, 그 고통의 소멸시효를 돌연 3년에서 6개월로 줄인 대법관들이나, 70년대 어떤 날엔 같은 도서관에 있었겠지 싶었다고 한다. 누군 계속 책을 읽고 다른 누군 거리로 뛰쳐나간 뒤 돌고 돌아 법원에서 마주한 인생들.

그 판사는 “6개월이란 근거는 교과서에도 없다”고 말했다. 이후 우린 별 말이 없었다. 나는 민청학련 옥고를 치르고 배상받지 못한 한 친구의 아버님이나, 거래 끝에 서로 부채의식을 쌓았을 정부와 법원의 높은 분들이나, 권력이란 빌려온 빚임을 끝내 모르던 위정자들을 떠올리다 그만둔다. 그저 화해란 어쩌면 당하는 것이겠구나 생각한다. 인생이란 어쩌면, ‘그날 내가 빚을 졌구나’ 하는 깨달음의 연속이겠구나 생각한다.

이경원 경제부 기자 neosar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