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시간강사법도 의도만 좋았을 뿐 기사의 사진
이상적인 목표만 앞세울 뿐
구체적인 방안 치밀하게 설계하지 못하고 내놓은 정책은 늘 그 모양

강사들 일자리 상실, 전임교원들 부담 증가, 학생들 학습권 침해…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


선한 의지가 늘 선한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좋은 뜻도 일방적으로 펼쳐지면 자칫 반감을 사기 쉽다. 상대의 처지를 배려하고 교감을 우선할 때 비로소 선한 의지는 선한 결과를 낳는다. 요즘 교계에서는 ‘봉사’보다 ‘나눔’이란 말을 더 많이 쓴다. 시혜적이고 자기과시적인 태도를 경계하고 상대와 더불어 연대하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책도 사정은 비슷하다. 우선 최저임금 급속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가 그렇다. 만성적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뜻은 훌륭하다. 하지만 제도개혁으로 생길 수 있는 혼란과 부작용을 경시한 탓에 현장에서는 불만이 들끓는다. 이상적인 목표만 앞세울 뿐 구체적 방안을 치밀하게 설계하지 못하고 내놓은 정책은 늘 그 모양이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도 그런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나도 1990년대 초 유학에서 돌아와 4년 남짓 전업시간강사를 했기에 관심 있게 지켜본 바다. 개정안은 강사에게 교원 법적지위 부여, 4대 공적보험 가입, 임용기간 1년 이상, 재임용 3년간 절차 보장, 방학 중 임금지급 등 강사들의 처우개선에 초점을 뒀다.

내용만 본다면 강사법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77년 유신독재체제가 시간강사를 의도적으로 교원에서 제외시킨 이래 41년 만에 법적지위를 회복한 것도 고무적이다. 시간강사의 처우 문제는 사실 오랫동안 거론만 됐을 뿐 법제화는 처음이다. 강사법은 2010년 5월 조선대 시간강사 서정민(당시 45세) 박사의 자살에 빚진 바 크다. 사람들이 그의 비극을 통해 강사들의 아픔에 크게 공감했다.

서 박사는 유서에 ‘나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라고 썼다. 열악한 강사료, 전임교원들의 갑질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다. 그 스트레스의 근원은 대학이 전임교원을 제대로 뽑지 않으면서 학교 규모만 키워온 데 있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간강사에 대한 전임교원들의 갑질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임교수들의 잡무에 동원되거나 심한 경우 논문 대필도 마다할 수 없었다.

본래 시간강사는 임시직이다. 시간강사를 거쳐 전임교원으로 임용되거나 전공에 맞는 연구소나 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보통이다. 교육과 연구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아예 강사직을 그만뒀다. 시간강사 문제는 전임교원 임용적체가 시작되면서 불거졌다. 이를 풀자면 전임교원 비율을 높이도록 유도하는 한편, 강사료 적정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강사법은 시간강사를 항구직(恒久職)으로 보고 처우개선에만 초점을 맞췄다. 오랫동안 비용절감 차원에서 시간강사를 부려왔던 대학들이 강사법에 순순히 따를지는 의문이다. 이미 대학들은 시간강사 최소화에 혈안이다. 지금까지 강사들이 맡아왔던 과목을 전임교원들이 맡도록 하거나 분반 강의를 없애고 대규모 강의를 많이 만들려고 한다.

강사법이 되레 강사들의 강의할 기회를 빼앗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강사법은 강사임용을 공개채용 방식으로 하도록 돼 있다. 강사 선임과정의 투명성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지방대학에 이르기까지 특정 유명대학 출신들이 강사직을 독점할 가능성이 크다. 그 외 대학의 학위취득자나 갓 학위를 마친 학문 후속세대는 설자리조차 없는 사태도 예상된다.

대학교육의 황폐화도 걱정이다. 어떤 학과든 전 과목을 전임이 커버할 수 없기에 그간 일부 전문분야는 강사들에게 의존해왔다. 그런데 그런 과목 모두를 전임교원에게 맡긴다면 해당 과목의 전문성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아예 대학이 강사가 맡던 과목을 없애버린다면 학생들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이는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다.

강사법의 선한 뜻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벌어질 상황은 자못 심각하다. 강사들은 일자리를 잃고, 전임교원들은 책임시간이 늘어 부담이 커질 것이며,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된다.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 강사법 적용을 받게 될 일부 강사는 이전보다 든든해진 처우에 만족할지는 모르겠으나 항구직으로 자리매김 된 시간강사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가 이미 인구감소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지방대학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대학들은 입학생 감소를 염려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본연의 기능을 축소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강사법은 그 퇴행적 흐름을 더욱 가속시킬 터다.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대학이 일반화된다면 한국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또 한 번 선한 의지가 무지·무능과 만나 비극을 낳는 꼴이다.

처음부터 교원지위 인정, 강사료 적정인상, 방학 중 강사료 일부 지급, 추가 비용 정부 일부 부담 등으로 엮어냈더라면 어땠을까. 강사법, 이대로는 정말 아닌데 어찌하나.

대기자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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