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삶에 지쳐… 관용 사라지고 ‘아웃사이더’로 차별 확산 기사의 사진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 중심엔 난민 문제가 있다. 지난 9월 난민인권센터 등이 서울 보신각 앞에서 주최한 집회에서 한 이집트 난민이 지원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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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부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2부 : 공동체 균열 부르는 ‘신계급’>
<3부 : 한국을 바꾸는 다문화가정 2세>
<4부 : 외국인 노동자 100만명 시대>
<5부 : 탈북민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법>


한국 사회에서 차별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학연·지연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차별은 범위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향한 혐오와 편견이 새로운 차별 영역이 됐다. 최근에는 탈북민, 난민, 다문화가정이 차별의 대상이다. 차별의 표현은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차별을 넘어선 ‘헤이트스피치(혐오 발언)’도 만연하다.

전문가들은 차별의 확산이 치열한 생존 경쟁의 부작용이라고 진단했다. 효율성과 지표로서의 경제 성장만 중요시되면서 관용과 포용이 약화된 결과라는 것이다. 과도한 경쟁, 불평등한 사회·경제 구조가 나아지지 않는 한 차별 현상은 더 극단적이고 광범위하게 변모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탈북민인 A씨는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한 청소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A씨의 억양을 듣고 “외국인이냐”고 물었다. 탈북민이라고 밝히자 “우리는 한국 사람만 쓴다”며 거절했다. A씨는 “나도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이라고 반박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상담을 요청했고 인권위는 청소업체의 행위가 “출신 지역에 따른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답했다.

한국 사회의 ‘아웃사이더(외부인)’는 편견에도 시달린다. 다른 탈북민 B씨는 자신이 탈북했다는 사실을 밝히자 “인신매매로 팔려 왔느냐”는 말을 들었다. 탈북민이라면 부정적인 일에 휘말렸을 것이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모욕적인 언사였다. 올해 초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실시한 난민 아동 차별 실태 조사에서 라이베리아 출신 아동은 “지하철에서 나를 보며 원숭이 흉내를 내는 사람을 봤다. 너무 화가 났다”고 토로했다.

북아프리카 국가 출신인 C씨는 한국 생활이 벌써 10년이 다됐지만 자동차를 빌리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렌터카 업체는 C씨에게 “외국인이라서 차를 렌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C씨는 “운전면허가 있는데 왜 안 되느냐”고 항의했지만 “나가, 인마”라는 욕을 들었다. 인권위는 C씨 사례 역시 차별이라고 봤다.

비단 아웃사이더만 차별에 놓이는 건 아니다. 전통적 방식의 학연·지연·혈연(3연)으로 인한 차별이 답습되고 있다. 음성적으로 이뤄져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에서 학연·지연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자조한다.

직장인 박모(35)씨는 “입사 후 상사들과 접점을 만들기 위해 복무했던 군부대, 장모님 고향까지 들먹였다”며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승진을 잘하는 사람은 결국 ‘연줄’이 좋았다”고 말했다.

‘3연’ 공식은 취업부터 승진까지 이어진다. 2016년 취업포털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사 담당자 307명 중 40.7%는 채용청탁을 받아본 경험이 있었다. 지난 6월 경기도 고양시 공무원노조가 6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승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요인’으로 72%가 학연·지연·혈연이라고 응답했다.

차별과 불평등은 극단적인 사회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반발이 심한 난민 수용 문제에서 가장 빈번히 언급되는 키워드는 ‘세금’과 ‘경제’였다.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이들은 “세금으로 난민들에게 지급하는 생계수당을 중단하라”며 “난민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자국민 역차별”이라고 외쳤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6일 “생활이 불안하고 팍팍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협적인 존재로 판단하게 되고, 공생의 가치는 약해진다”고 했다.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의 포용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자신은 불평등의 피해자이며 생존을 위해 불평등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비장함이 커진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 불황 속에서 사회의 관용성이 떨어진다”며 “지난 10년간 집권정부는 인권의 가치보다 경쟁·효율성을 중시했고, 이 같은 기조가 사회전반의 국민의식으로 퍼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회 통합의 실패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공론화를 통해서 갈등을 해결해 나가고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는 감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는 것이다. 분노를 표출하지만 대화나 타협을 해보려는 시도는 부족하다.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각자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데서 난민 반대, 성별 대결이 나타나고 있다.

서영표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대로 가면 어렵게 이끌어 온 민주주의가 퇴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인진 교수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사회의 권위주의적 성향을 가속화시켜 민주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킨다”며 “차별·혐오 확산은 비민주적 사회의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차별은 최근 더 극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SNS의 발달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더 쉽게 집단화한다. 집단끼리 자신들의 신념을 더 공고히 다지면서 차별과 혐오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집단의 논리를 갖게 되면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게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여과 없이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차별·혐오의 일상화’도 나타난다. 과거에는 외국인, 탈북민 등 소수 특정집단에 집중되던 차별·혐오가 이제 남녀, 노인, 중장년층 등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들에게 쏟아지고 있다. 김선업 고려대 사회문제연구소 교수는 “비슷한 인식을 가진 이들이 온라인 공간에 모여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함으로써 차별이나 혐오는 더 쉽게 확산되고 있다”며 “한국의 차별, 혐오, 분노 현상은 상대방을 가리지 않고 일상적으로 폭발하며,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확산된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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