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조준모] ILO 협약 비준, 과속을 우려한다 기사의 사진
수출중심 경제에서 국제기구 협약 비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아무 걱정 않는 것도 문제지만 과속 비준을 촉구하는 것도 문제다.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따른 공익위원 안을 발표했다. 이후 진행을 예상해 보면 내년 6월 대통령이 ILO 100주년 총회에 참석해 비준과 연설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공익위원 안 중 주목되는 것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해 사용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노조법 제24조에서 삭제하는 내용이다. 유급 전임자 제도는 13년이나 끌어오다 사용자로부터 임금과 편의를 제공받으면서 적대적으로 비방하는 노사 관계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고조된 2010년에 가서야 금지됐다. 현재의 공익위원 안은 이 유급 전임자제도를 부활하겠다는 신호탄이다.

유급 전임자제도를 대체하기 위해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가 도입됐다. 배경은 노동조합의 유지·관리 업무,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 활동 등 건강한 조합 활동을 위해 노조 활동가들의 임금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타임오프는 면제시간에 ‘합리적 제한’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 ILO 협약 143호 제10조 3항에도 부합한다. 그러나 문제는 2010년 이후 우리 노동계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ILO 결사의자유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권고한 문건에서 발생한다. 2014년 문건은 ‘유급 전임자는 입법 개입 없이 당사자 사이에 자유롭고 임의적인 교섭에 맡겨질 것’을 권고했고, 2017년 문건에서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 금지제도를 폐지’할 것을 처음으로 권고한다. 법률에 근거해 면제시간에 상한을 두는 것,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용자 처벌 규정을 폐지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물론 ILO의 이러한 권고가 ILO 협약정신인 ‘노동조합의 자주성’에 위배된다든지, 특정 국가의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권고라든지의 문제제기는 할 수 있지만 문건으로 권고를 받은 상황에서는 만시지탄이다.

2010년 이전에 국내에서 유급 전임자가 가장 많았던 H사의 경우 노동조합 사무실에 상근하는 유급 전임자가 100명, 대의원이 400명 정도였다. 대의원도 대부분 사실상의 유급 전임자였다. ILO 권고를 따라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론적으로는 유급 전임자 18명에 추가로 400~500명의 유급 전임자를 다시 둘 수 있게 된다. 전국 단위 노사단체가 대표성을 가지고 유급 전임자 범위를 정하고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 지켜야 하는 자율규제를 마련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노사 관계는 하급노조가 조합비를 체크오프(노조 조합비를 사측이 급여공제로 걷는 제도)해 상급연맹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어서 상급단체가 일탈 대기업 노사를 징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ILO 권고는 노동조합의 힘이 현장으로 더욱 쏠리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대기업 유급 전임자들의 상급노조에 대한 영향력도 커질 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이중 노사 관계, 이중 노동시장을 더욱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공무원 관련법은 선(先)비준 하더라도 유급 전임자 건은 현장 노사 관계 영향이 큰 만큼 비준을 서두를 일이 아니다. 현장 노사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 분석하고 국내법 개선의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 그간 정부 차원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ILO에 현행 제도의 역사와 불가피성을 정확하게 이해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다시 한 번 진행됐으면 한다.

노사 자치는 자유이고 국내법은 이 자유에 최소한의 균형을 주는 규율(discipline)이다. 법이 아니라 노사 자율로 규율을 만들지 못하면 노사 관계는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게 된다. 10% 조직근로자들을 위한 ILO 노동기본권 협약 비준도 중요하지만, 국내법으로 구체화 과정에서 형식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경계가 필요하다. 현장 노사 관계의 안정성이 훼손되고 국민 경제사회에 막대한 부작용이 초래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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