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고승욱] 책임총리는 어디 있는가 기사의 사진
아프리카 순방을 위해 그제 출국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요즘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최대한 나누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철학이 1년반 넘게 국정에 반영되면서 실세 총리의 면모를 한껏 보여주고 있다. 출국할 때 타고 간 공군 1호기에는 외교부·환경부 차관, 관세청장을 비롯한 각 부처 공식수행원 19명이 함께했다. 54개 기업과 경제단체 대표들도 동행했다. 총리가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임명 과정에서 실질적인 인사제청권을 행사한 직후여서 의미가 남달랐다.

사실 우리에게는 대통령 축사를 대신 읽는 ‘대독 총리’가 익숙하다. 헌법에는 총리가 행정각부를 통할하고(86조②),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88조③) 국무위원을 제청하고(87조①) 해임을 건의한다(87조③)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 총리가 인사제청권을 행사했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김&장’ 논란으로 관심이 집중된 경제부총리 임명에 총리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했다.

이 총리는 이미 ‘차기’ 중에서 선두다. 전남지사 때까지 1% 안팎에 불과했던 ‘정치인 이낙연’의 대선주자 선호도는 최근 15%를 넘겼다. 범진보진영 후보 중 차기 대선주자로 누가 적합한지 물은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5명 중 1명이 이 총리를 꼽았다. 공동 2위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8.4%)보다 2배 이상 높은 지지율이다. 여기에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이 영남 정치인을 대통령 후보로 세워야 했던 말 못할 아쉬움을 감안한다면 대망론은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테마주까지 등장했으니 지금으로서는 차기에 가장 근접한 정치인이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성공하는 총리가 그렇게 중요할까.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총리가 공무원 조직의 기강을 잡고, 산같이 쌓인 과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문 대통령이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이끌고, 2022년 대선에 대비하기 위해 매주 이 총리를 만나 국정을 의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총리도 취임 직후 그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내각에 맡겨진 일을 얼마나 책임 있게 수행하는지가 책임총리의 본령”이라며 “다른 무엇보다 유능한 내각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는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었던 지난해 8월 국회에서 ‘농피아’ 척결을 외쳤고, 지난 4월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터졌을 때 환경부를 향해 “현장부터 찾아가라”고 질책했다. 이 총리의 지지율이 올라간 비결이었다. 공무원의 특권의식, 복지부동과 탁상행정을 걷어내고 개혁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책임총리는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 사람이 많다. KTX 사고 현장을 찾아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3일 뒤 강릉에서 더 큰 탈선사고가 나면서 머쓱해졌다. 이 일로 농피아가 진짜 척결됐느냐는 말이 돌았다. 사립유치원 비리로 전국이 끓어오르자 이 총리는 “어느 유치원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모조리 국민에게 알려드리는 게 옳다”고 말했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협력해 학부모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하는데 총리가 조정에 나섰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많은 국정 현안이 부처의 칸막이를 뛰어넘는 정부 차원의 설계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취학 전 아동의 교육을 보살피려면 교육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가 모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만일 비정규직 해법이 노동부에서 덜컥 나온다면 부작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총리의 역할이다. 책임총리라면 지지율이 떨어져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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