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때 발의한 ‘위험 외주화 방지법’ 2년간 국회서 낮잠 기사의 사진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태안화력발전 24살 비정규직 고 김용균씨 촛불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언급된 것은 지난해 2월이 마지막이다. 이마저도 용역 계약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숨진 김모군의 월급명세서를 사례로 인용한 수준이었다. 국회에서 구의역 사고가 잊힌 사이 또다시 비슷한 사고로 한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불과 2년 만이다. 정치권은 뒤늦게 서로를 향해 ‘구의역 사고를 잊은 책임’을 물었다.

2년 전 구의역에서 김군이 숨진 뒤 여러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을 패키지로 발의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산업재해에 대해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기업살인처벌법’을 내놨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구의역 사고 뒤 쏟아져 나온 법안들은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산입범위 등 다른 노동 현안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19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이 사내 하도급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산안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최근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 사고로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자 정치권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17일 “구의역 사고와 이번 사고는 상시적인 위험을 외주로 맡겨서 빚어진 우리 산업현장의 참사”라면서 “지난해 9월부터 환노위에 관련 법안이 여러 건 제출됐는데 보수야당의 반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환노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민주당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임 의원은 “근로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산입범위 등 노동 현안이 많아 논의가 조금 뒤로 밀렸다”며 “정부가 산안법 개정안을 준비하겠다고 해서 기다리던 중에 사고가 벌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현안이 산적했다고 하더라도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산안법을 우선 처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구의역 사고 당시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을 맡았던 우원식 의원은 지난 14일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꽃다운 목숨을 잃고 제도개혁을 약속한 지 2년반이 되었는데 그동안 뭐 했냐는 질책에 할 말이 없다”는 반성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국회는 이제야 비로소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환노위는 19일 고용노동 소위원회를 열어 정부가 지난달 제출한 산안법 전면 개정안을 심사키로 했다. 이 개정안은 유해성과 위험성이 높은 작업의 사내 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한 경우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산업재해가 다시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해당 사업장에 ‘작업 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부여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12월 임시국회 내에 산안법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당도 “노동자의 안전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법안 처리 시기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쟁점을 좁히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재계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산안법 개정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 중지 규정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해 남용될 소지가 있고, 사업주 처벌 강화도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사내 도급 원칙적 금지가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환노위 한국당 관계자는 “근로자의 안전 강화는 가장 우선돼야 할 가치지만, 규제가 과한 측면은 없는지 경영계 입장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뒤늦게 대책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산재 사망의 공통된 특징이 주로 하청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멈추지 않고 있다”며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당정은 19일 긴급 협의를 열어 대책 마련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판 신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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