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원재훈] 베트남 무적 기사의 사진
유년시절, 외갓집 삼촌은 월남에서 미군 통역장교로 근무하고 귀국했다. 월남에서 번 돈으로 서울 신림동에 있는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그분은 판사나 검사가 될 수 있었던 재능을 희생하고 장가도 가지 않고 월남에 다녀와 무너진 집안을 일으켰다고 했다. 전쟁 중이었던 월남에 다녀오면 한 재산 모은다는 이야기를 아주 어렸던 내가 기억을 하는 걸 보니, 베트남은 황금의 땅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것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결과물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소년기에 베트콩은 미국이라는 ‘람보’의 총에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버리는 공산당으로 인식되었다. 월남전에서 패배한 미국인의 반성과 성찰이 스며있는 문제작인 ‘람보’에 비해 같은 제목으로 나오는 후속편들은 전쟁 괴물을 만들어 한풀이를 하는 B급 영화였다. 그것들은 말 그대로 할리우드 액션의 전범적인 영화였다.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틀어준 후속 편 람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베트콩이 아닐까. 나 역시 아시아인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그런데 왜 영화관 안에서는 내가 근육질의 람보로 착각을 하는 것일까. 이게 뭘까.

대학에 들어가서야 호찌민을 통하여 그 나라의 잠재성과 대단한 면을 발견했다. 베트남의 지난한 식민지 역사와 그 극복 과정을 알게 되면서 베트남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이해한 것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의 축구경기를 보고 나는 이제 베트남을 완전히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보다 축구는 한 수 떨어지는 동남아시아 국가 간 경기가 18%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베트남을 정겨운 이웃나라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이제 중년이 되어 바라보는 베트남. 그들이 경기장에서 외쳤던 구호 ‘베트남 무적!’이다. 베트남은 스즈키컵 결승전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아주 가깝고도 정겨운 나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것이 스포츠의 힘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 가족은 일방적으로 명장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을 응원했다. 때론 우리 팀이 월드컵에서 뛰는 것처럼 베트남 선수들이 상대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에 넘어지면 심판을 욕하면서 박지성이나 손흥민이 넘어진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축구를 보면서 저게 인생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때론 적이 되고 때론 친구가 되는 것은 단지 비정한 국제관계 만이 아니다. 장삼이사의 인간관계가 그런 것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그렇다.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경기에서 골을 넣기가 참 힘들다는 거다. 그걸 꼭 성공이라고 비유하자면 그렇다. 축구는 수십 번의 실패를 거쳐 한 번의 성공(골)을 한다는 메타포를 전해주는 운동이다. 그것은 승리다. 우리에게 남북관계를 비롯해서 경제 정책, 국회 문제 등에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붉은색 판타지가 있었다. 연말이 되면 예수님의 사랑과 숭고한 마음으로 여겨지는 붉은색의 계절이 된다. 산타클로스를 비롯해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운동이 대표적이다. 우리의 붉은악마처럼 온통 붉은색 옷을 입은 베트남 국민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서운 겨울 날씨에 타오르는 불꽃을 보았다. 축구경기가 올 한 해와 나의 인생을 순식간에 되돌아보게 할 줄은 몰랐다.

그것은 아마도 베트남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베트남을 기억하는 개인사는 바로 우리의 현대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혼재하는 전쟁과 그것을 억제하는 평화는 연말이 되면 정산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베트남 무적!’이라고 응원하듯, 신뢰와 지속적인 관계 회복에서 시작된다.

원재훈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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