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에서] 3색 문래동 기사의 사진
슈퍼카 브랜드 영국 맥라렌의 600LT가 그 미려한 모습을 지난 13일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영국에서 지난 7월 공개된 모델로 ‘트랙의 괴물’로 불린다. 그런데 슈퍼카 맥라렌 600LT의 미디어 론칭 행사가 열린 곳이 의외의 장소여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서울의 화려한 도심이 아닌 영등포구 문래동 대선제분의 허름한 옛 공장 안이었다.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지난달 6일 이 폐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고 선포식을 가졌다. 80년 넘게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공장건물의 역사와 가치에 주목, 허물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는 재생 방식을 택했다. 내년 8월까지 서울을 대표하는 차별화된 랜드마크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 공장은 대지 면적 총 1만8963㎡로 대선제분이 2013년 공장을 아산으로 옮긴 뒤 가동하지 않은 지 5년 넘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 건설된 밀가루 공장으로 1958년 대선제분이 인수한 이후 지금에 이른다. 사일로, 제분공장, 목재창고, 대형 창고 등 총 23개동으로 구성돼 있다. 근현대 산업유산으로서 옛 모습이 오롯이 남아 있는 영등포의 마지막 대규모 공장이다.

문래동 일대는 1899년 경인선 개통과 함께 방직, 제분 등 제조산업의 거점이었으나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공장들이 떠난 낙후된 지역이다. 경성방직·방림방적 등 섬유공장과 대선제분·OB맥주·크라운맥주 등 대형 공장이 밀집한 지역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철강산업 단지로 변모해 큰 철강업체들과 철재상들이 많이 입주했다. 80년대 후반~90년 초반 철강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업체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의 철공소들만 남게 됐다. 그 사이 옛 대형 공장 부지엔 대형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 등 대부분 새로운 시설물들이 들어섰다.

문래동 일대는 지난해 ‘영등포 경인로 주변 도시재생활성화지역(도시경제기반형)’으로 선정되면서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과거 방림방적 부지였던 문래동3가 1만3000㎡에는 2022년쯤 1000석 규모의 다목적 콘서트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대선제분 공장이 도시재생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을 경우 경인로 주변 문래동에는 문래창작촌과 대형 첨단 건축물들과 함께 독특한 문화와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다. 대선제분 공장 건너편엔 아파트형공장인 에이스 하이테크시티 건물들과 오피스타워인 영시티 건물들이 있다. 아파트 단지와 문래근린공원을 경계로 하고 경인로 사이에 위치한 지역은 요즘 인기 높은 문래창작촌이다. 저렴한 작업공간을 찾던 젊은 예술가들이 2000년대 초부터 모여들어 철공소와 예술촌이 조화를 이룬 독특하고 개성 있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철공소 골목에는 예술가들의 화랑과 카페, 스튜디오는 물론 음식점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 예술인 300여명이 작업실 100여곳에서 활동해 예술인 밀집지역으로 손꼽힌다.

문제는 예외 없이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다. 구는 지난 6월 문래동 일대 건물주 및 임차인의 상생협약 103건을 체결하는 등 예방 노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임차인들 상당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미 70%정도 진행됐다고 입을 모은다. 낙후한 구도심이 개발되면서 임대료가 올라 기존에 살던 영세 주민이나 상인이 밀려나는 현상이다. 상당기간을 거쳐 만들어진 독특한 성격을 지닌 지역에서 임차인들이 맘 편하게 영업과 창작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개발과 이익보다 ‘보존’의 가치를 살리는 도시재생사업의 모범적인 사례를 만드는 게 절실하다. 경인로 주변 문래동이 3색의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 될 경우 찾는 사람들은 내국인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김용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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