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호 (16) 험난한 재활 과정서 ‘종호야 애썼다’ 음성

주님 격려에 벅찬 감동의 눈물, 나지 않았던 목소리도 점차 회복… 목숨뿐 아니라 노래도 허락하셔

[역경의 열매] 박종호 (16)  험난한 재활 과정서 ‘종호야 애썼다’ 음성 기사의 사진
박종호 장로(왼쪽 세 번째)가 지난해 2월 서울 여의도침례교회에서 열린 ‘박종호 초심 감사예배’에서 찬양사역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기도하는 모습.
장장 16시간에 걸친 큰 수술을 했지만 무균실에 입원해 퇴원할 때까지 진통제 주사는 단 한 번도 맞지 않았다. 이 또한 기적이었다. 반면 내게 간을 떼어준 둘째 딸은 미칠 듯이 아팠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딸의 간이 6개월여 만에 회복돼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가 직장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수술 한 달 뒤 휴대전화를 켜보니 전화기가 계속 울렸다. 그동안 나를 위해 기도한 분들의 연락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있었다. 주님이 이렇게까지 은혜를 베푸셨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멋대로 살았던 나를 주님께서 아름답게 쓰시고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을 지금껏 살려내셨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다시금 실감했다.

수술 이후엔 혈액과 분비물을 빼내기 위해 1년 동안 간과 복부에 호스를 낀 채 살았다. 또 회복을 위해 매일 하루에 3시간씩 걸어야 했다. 퇴원 이후엔 햇빛에 노출될까 한여름에도 꽁꽁 싸맨 채 매일 산책했다.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라 햇빛을 쐬었다가 피부암에 걸릴 수 있어서였다. 매일 국수 반 그릇에 다량의 약을 먹으며 3시간씩 걷는 생활을 반복하니 일 년 새 40㎏ 가까이 체중이 줄었다. 어떨 땐 너무 힘들고 처지도 비참해 하염없이 울며 걷기도 했다.

그러던 2016년 여름, 마음에 ‘종호야 애썼다’라는 소리가 느껴졌다. 그 순간 무릎관절이 아픈 것도 아닌데 힘이 탁 풀려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하나님이 수고했다고 격려해준 데 벅찬 감동이 올라와 또다시 눈물이 났다.

수술 직후 6~7개월간 나지 않았던 목소리도 걸으면서 점차 회복됐다. 그간 목에서 바람 새는 소리만 나서 ‘하나님이 목숨만 살려주셨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수술 집도의에게 평생 노래는 하지 못하는 것이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는 “저는 성대는 안 건드렸어요. 계속 노래하세요” 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수술한 지 8개월쯤 되자 예배 도중 갑자기 터지듯 목소리가 나왔다. 그 순간 기절할 것 같이 기뻤고 또 눈물이 났다. 목숨뿐 아니라 노래도 허락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 나온 눈물이었다.

수술 10개월여 뒤인 2017년 2월엔 찬양사역자 고형원 송정미 등과 함께 서울 여의도침례교회에서‘초심’을 주제로 회복 감사예배도 드렸다. 이 때 몸무게가 73㎏ 정도였다. 1000여명의 성도들이 변한 내 모습을 보고 놀라며 치유의 기적을 행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마치 청년으로 돌아간 듯 젊은 시절 전성기 때의 목소리가 나오고 건강도 어느 정도 회복되니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고민이 됐다. 주님이 새로이 주신 삶을 허투루 쓸 순 없어서였다. 얼마 동안 기도하니 ‘그냥 하던 거 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오로지 주님을 찬양하며 다시 살려주신 은혜를 간증하고 병으로 고생하는 한국예수전도단 선교사들을 돕는 것. 그 일을 다시 감당하라는 부름이었다. 이전처럼 여러 생각 않고 주신 마음 그대로 따랐다.



그렇게 지난해 하반기부터 찬양사역을 시작했고 지금껏 국내외 교회를 다니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찬양집회에서 투병 기간 느낀 점을 간증하고 예전 못지않은 선교비를 매달 후원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 이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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