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여행] 한국과 미국의 선거제 개혁 기사의 사진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48.2% 득표율로 46.1%를 득표한 도널드 트럼프보다 무려 287만여표나 더 얻었지만 백악관 입성에 실패했다. 인구수가 각기 다른 각 주를 대표하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306대 232로 밀린 것이다. 선거 후 ‘캐나다로의 이민 신청이 쇄도했다’는 등 미국 사회의 ‘멘붕’ 상태가 SNS를 통해 전해졌고, 그런 결과를 초래한 선거인단 선거제도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도대체 287만표를 덜 얻은 인물이 어떻게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나’ 하는 볼멘소리 말이다.

21세기 지구촌 사람들에게, 그리고 미국민에게도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 제도가 탄생한 배경은 미국이 바로 하나의 단일 국가가 아니라 13개 다른 국가(주)들의 연합으로 시작된 것에서 연유한다. 1783년 파리협정으로 ‘영국왕의 신민’이 아니라 이제는 ‘미국의 시민’이 된 미국민들은 기존의 13개 영국 식민국가 체제를 유지했지만 곧 단일 국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거나, 특정 국가 발행 화폐의 가치가 급락하거나, 영국으로부터 플로리다 지역을 물려받은 스페인과 영토 분쟁에 휘말리는 등 갖가지 내외 분란이 강력한 중앙 국가를 더욱 필요로 하게 한 것이다. 1787년 5월 25일에서 9월 17일까지 3개월 넘게 12개 국가 대표 55명이 필라델피아에서 제헌의회를 열고 숙의를 거듭한 것도 이런 중앙국가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된 탓이다. 로드아일랜드처럼 참석하지 않거나 회의가 진행되던 중간에 필라델피아에 늦게 도착한 국가의 대표들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대통령을 어떻게 뽑을까 하는 것이었다. 코네티컷같이 인구가 적은 국가들은 국민 직선 방식보다는 입법부에 의한 선출 방식을 선호했고 그 입법부를 각 국가의 인구수에 관계없이 동등한 수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펜실베이니아 인구는 델라웨어의 10배가 되고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매사추세츠 세 곳의 인구를 합하면 나머지 10개 국가의 인구에 버금가는 수준인데 이들은 당연히 인구 비례로 대통령을 뽑을 의원 수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러 후속안들이 이어지던 끝에 결국 의원이 아니라 선거인단을 국민들이 뽑고 이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 방안은 인구가 적은 코네티컷, 델라웨어 등의 입장에서는 국민 직선제보다 나은 것이었다. 인구가 적어 자신들의 대표성이 작아지는 것을 다소라도 무마할 수 있어서다. 인구비례안을 내놓았던 버지니아 등 큰 세 나라들도 중앙정부 형성을 위해 부분 양보를 택했다. 오늘날 ‘트럼프의 역설’은 연방국가 탄생기 협상의 산물인 셈이다.

요즘 국내에서도 선거제도가 화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원칙에 대한 합의 소식도 들린다. 곧이어 각론을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기본 원칙 합의는 여든 야든 더 이상 당략을 위해 요리조리 빠져나가지는 못할 하나의 족쇄를 스스로 채우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우리는 버지니아와 로드아일랜드가 대립하는 것과 같이 독립적인 정치집단이 있어 각각의 권리를 균형감 있게 보장해줘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인구비례제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상식을 구체화하는 선거제 개혁이 미합중국 출발 때처럼 ‘차곡차곡’ 진행되기 바란다.

주영기 한림대 교수·미디어스쿨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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