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재열] 초연결사회의 숙성된 위험 기사의 사진
정교하고 복잡한 네트워크 구축한 사회일수록
사고 발생 시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위험을 숙성시킨 가장 큰 이유는 비용감소 압력…
위험 외주화한 결과 대형 재난으로 폭발


한국은 이중으로 재난 위험에 처해 있다. 새로운 ‘복합돌발형 재난’이 빈번해졌는데, 과거의 ‘숙성형 재난’은 아직 청산하지 못했다. 초연결은 편리함과 신속함을 표상한다. 그런데 초연결사회의 어두운 이면은 복합돌발형 재난이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고, 사물인터넷(IoT)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초연결사회에서는 위험도 순식간에 퍼진다. 모든 것을 담아 초고속으로 연결하는 클라우드는 값싸고 편리한 플랫폼이지만, 한번 멈추면 파급되는 피해도 치명적이다.

지난달 22일 서울 지역 아마존웹서비스(AWS)에서 발생한 서비스 장애로 인해 이곳에 서버를 둔 한국의 대표적 기업, 대학, 은행의 서비스는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같은 달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지하통신구 화재는 통신망을 활용하는 모든 온라인 서비스를 무력화시켰다. 서울 북서부 지역부터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 수십만명이 사용하는 전화는 물론 인터넷과 TV, 그리고 카드 결제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까지 먹통이 되었다. 초연결사회의 기반인 네트워크가 파괴되면 파급되는 피해도 증폭된다. 정교하고 복잡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사회일수록 그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정보화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은 ‘인터넷 대란’을 통해 초연결의 위험도 최전선에 있음을 이미 확인했다. 2003년 1월 25일 슬래머 웜이 침투한 KT의 메인 DNS 서버에서 시작된 피해는 도미노처럼 퍼졌고, 전국 은행과 관공서의 온라인 서비스가 일시에 무력화되었다.

이러한 미래형 위험을 페로(C. Perrow) 교수는 ‘정상사고’라 불렀다. 사고가 정상이라니 어불성설 같지만, 말하자면 마치 정상분포(normal distribution)의 양극단에 있는 오류의 가능성과 같은 위험이라는 뜻이다. 즉, 사소한 인간적 실수나 작은 기계적 결함 등으로 생긴, 가능성은 매우 작지만, 그 피해는 파국적인 사고다. 긴박하게 얽힌 복잡한 시스템일수록 정상사고를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달 연이어 발생한 강릉 KTX 열차 탈선사고나 고양 백석역, 안산 고잔동, 서울 목동의 온수관 파열사고, 그리고 태안화력발전소 하도급 노동자 사망사고를 보면 우리가 아직 숙성형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정보가 충분치 않거나, 위험요소를 위험으로 인지하지 않는 잘못된 가정에 따라 행동하거나, 각 개인이 인지한 위험요소에 대해 충분히 소통하지 않거나, 혹은 비용 절감의 압력 아래에서 개별적 노력을 최소화하는 경우에 위험요소들이 오랜 기간 숙성되고 결국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하는 것이 숙성형 재난이다. 산업재해를 연구한 하인리히는 1대 29대 300의 법칙을 제시한 바 있다. 한 번의 재난이 터지기 전에 29번의 유사한 심각한 사고, 그리고 300번의 중요한 위험징후들이 있었다. 재난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가 겪은 인적 재난은 한국적 근대성 속에 자리 잡은 위험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로 기억되는 1990년대의 주요 비극이나 304명의 사망자를 낳고 국민에게는 시대적 트라우마를 남긴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는 모두 숙성형 재난이었다. 위험을 숙성시킨 가장 큰 이유는 비용 감소 압력이었다. 건설자재를 줄이거나 무리해서 과적하거나 핵심적인 위험관리 업무를 외주화한 결과 숙성된 위험들이 쌓여 결국은 대형 재난으로 폭발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화된 30~40년 전에 깔린 공장설비나 지하철, 지하 공동구 등의 인프라는 수명이 다했다. 그런데 외주화로 인해 경력이 짧고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비정규직이 주로 투입돼 유지보수를 하다 보니 곳곳에서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이런 재난을 막으려면 위험관리비용을 제대로 산출하고 이를 집행해야 한다. 이 비용을 제때 지불하지 않으면 결국은 ‘사람 목숨값’이란 청구서가 되어 돌아온다. 이미 우리 국민은 안전에 관한 한 선진국 수준의 높은 기대치를 보인다. 복합돌발형 재난을 줄이기 위해서도 백업과 우회로 확보를 위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조직의 비용 감소 노력이 안전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진행되는 것을 막으려면 감리, 감독, 감사를 정상화해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서 확인하듯 엘리트 카르텔로 인해 안전 관련 규제는 느슨해졌다. 정치적으로 임명된 사장이나 전리품으로 변한 낙하산 감사의 비전문성으로 인해 공기업이 관리하는 시설의 위험은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선로전환기를 거꾸로 시공하고도 초고속열차를 여태까지 운영해 온 ‘우리 안의 적당주의’를 획기적으로 청산하지 않는 한 4차 산업혁명이나 새로운 기술 혁신 모두 복합돌발형 재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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