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철오] 남겨진 사람 앞에서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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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가을, 강원도 영월의 고등학교 교사 류건덕은 술에 빠져 하루하루를 허비했다. 임용 5년차였지만 군 복무 33개월을 빼면 재직기간은 2년도 되지 않았다. 학교가 낯설었고, 사람이 귀찮았다. 술병 나뒹구는 골방의 좁은 창틀을 넘어온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깨고, 허겁지겁 단장해 학교로 달려가기가 일쑤였다.

그날 밤도 술에 잔뜩 취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다섯 청춘이 아까웠다. 가장 먼저 보이는 교회로 들어갔다. 예배당을 홀로 지키던 목사는 젊은 취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따뜻한 차를 내왔다. 류건덕은 차로 쓰린 속을 달랬다. “힘들 땐 언제든 찾아오시게.” 목사의 목소리가 차보다 따뜻했다. 류건덕은 주말마다 교회를 찾았다. 예배당으로 어색한 걸음을 들이던 어느 날, 매일같이 쓴술을 들이키던 입에서 기도문이 나왔다. 교회가 좋았다.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웠다. 자리를 잡고 싶었다.

청년부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이항자를 만났다. 목사 아버지 밑에서 구김 없이 자랐고 청년부를 건강한 웃음으로 채운 동갑내기 처녀였다. 류건덕은 청춘을 술과 바꾼 시간들이 부끄러웠다. 이항자를 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먼저 말을 걸 수 없었다.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류건덕은 청년부의 마니또 게임에서 이항자와 비밀친구로 이어졌다. 류건덕은 이항자에게 몰래 선행을 베풀었고, 곧 들켰고, 함께 식사했고, 이야기를 나눴고, 사랑을 고백했다. 류건덕은 그해 겨울을 넘겨 청혼했다. 1985년 10월 9일. 류건덕과 이항자는 부부가 됐다.

이항자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신혼에 세를 얻은 영월의 단칸방에서 충북 제천의 아파트로 들어갈 때까지 20년간 교사 남편의 박봉을 쪼개 넉넉지 않은 살림을 꾸렸다. 류건덕이 영월·춘천·태백으로 근무지를 전전하는 동안, 이항자는 가끔 홀로 남아 외동딸을 양육하며 양가 부모를 봉양했다. 맞벌이하는 시누이를 대신해 두 조카도 맡아 키웠다.

딸이 서른 살 문턱에 이르고 양가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2015년 봄, 쉰여섯 이항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감리교 신자인 이항자의 꿈은 장로였다. 장로 수업을 봉사활동과 병행했다. 류건덕은 주말마다 집 앞 텃밭을 일궈 아내의 반찬봉사에 먹거리를 보탰다. 한때 교직에 회의를 느꼈던 청년 류건덕은 중장년의 교감이 돼 있었다.

2017년 12월 21일.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요일이었다. 류건덕은 출근하면서 봉사활동을 가는 아내를 차량 조수석에 태우고 말했다. “오늘은 좀 쉬지.” 남편은 아내를 걱정했다. “곧 크리스마스잖소. 반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야속한 아내는 이웃을 걱정했다. “문자메시지나 보내줘요.” 괜한 토를 다는 류건덕에게 이항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항자가 차에서 내리고 잠시 뒤, 류건덕의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오늘도 좋은 하루….’

이항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류건덕은 그날 밤 11시50분 제천 하소동 스포츠센터 화재참사 현장 인근 병원 영안실에서 아내의 주검을 만났다. 9층짜리 건물을 집어삼킨 불 속에서 목욕탕의 첨단시설도, 구조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건물에서 모두 29명이 숨졌다. 백설기 2개가 류건덕에게 유품으로 돌아왔다. 그중 하나는 아내가 사고 당일 봉사활동 중 챙긴 남편의 몫이었다. 류건덕은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소방 지휘관이 LPG 탱크 방재보다 인명구조에 주력하도록 지시했으면 더 많은 사람을 살렸을까. 아니면 탱크가 가열돼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을까. 이항자는 살아 돌아왔을까. 촌각으로 생사가 결정되는 화마 앞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남겨진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뿐이다.

진화의 업무상 과실치사를 입증하는 일도, 유족을 대표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도, 이로 인해 악화된 여론과 마주할 때마다 눈을 질끈 감는 일도 류건덕이 원했던 삶은 아니었을 테다. 지난 12일 강원도 정선의 한 고등학교에서 만나 아내에 대한 기억을 꺼낸 예순 류건덕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침묵은 무겁고 길었다.

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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