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민태원] 생명나눔 불씨를 다시 지피자 기사의 사진
“2개월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선물하고 간 천사 같은 아이. 아가야, 짧은 생이었지만 너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주 많단다. 사랑하는 부모님, 그리고 가족들, 계속 걱정해주시던 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님들. 6일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코디네이터 이모들도 네가 계속 생각나.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더 건강하게, 더 오래 부모님께 투정도 부리고 사춘기 시절도 보내고 꿈을 펼치며 건강하게 살기를 기도할게.”

장기기증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조미정씨가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이 발간한 ‘아름다운 동행’ 최신호에 실은 글의 일부다. 지난여름 뇌사 장기기증으로 다른 환자에게 새 삶을 선사하고 하늘나라로 떠난 한 살 아기를 기리고 있다. 생명나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 뭉클하다. 감동적인 기증 스토리를 접하면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 스스럼없이 장기를 나눠주고 떠나겠다는 마음이 샘솟는다. 불쑥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그런 상황이 닥치면 달라진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가족 거부로 장기기증이 성사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정말 힘들게 결정을 내린 가족들에게는 무한한 존경심을 표할 수밖에 없다.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 이곳저곳에서 결산 작업이 한창이다.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장기나 인체조직 기증을 통한 생명나눔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우울하다. 내리 2년째 뇌사자 장기와 인체조직 기증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뇌사자 장기기증의 경우 2016년 573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 515명으로 확 줄었고 올해는 450명 안팎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기증 선진국들처럼 두 자릿수를 기록했던 인구 100만명당 뇌사 기증자 수(PMP)는 2년 만에 다시 한 자릿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뼈나 연골 피부 신경 등 인체조직 기증 역시 2016년 285명에서 지난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8명으로 추락했고 올해는 100명을 겨우 넘길 것으로 예측된다.

생명나눔의 불씨가 자꾸 사그라지고 있는 사이, 누군가의 장기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등록된 장기이식 대기자는 12월 현재 3만6000여명이다. 하루 4.4명 정도는 장기 순번이 돌아오길 학수고대하다 세상을 떠난다. 일부 환자와 가족은 불법적으로라도 장기를 사서 이식받으려고 중국 등 해외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뇌사자 장기 이식이 법제화된 2000년 이후 장기기증은 줄곧 증가세였다. 비운의 복서 최요삼 선수와 김수환 추기경 등 사회지도층의 장기기증은 생명나눔의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2016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로 바뀐 이유는 뭘까.

먼저 환경적 요인을 들 수 있다. 의학 발달로 뇌사 원인이 되는 뇌혈관질환과 교통사고 사망률이 많이 줄었다. 올해 2월 시행된 연명의료결정제도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연명치료 중단이 결정되면 일부 뇌사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던 환자는 그걸 제거해야 해 뇌사상태를 유지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높은 기증 거부율이 한몫한다. 올해 10월 말 기준 국내 뇌사 추정자의 장기기증 거부율은 60%에 육박한다. 인구가 우리와 비슷한 스페인이 15%대인 것과 비교된다. 여기에는 신체 훼손을 꺼리는 한국적 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만 최근엔 미디어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한다.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이고 선정적인 언론 보도가 제일 타격이 크다. 그래서 장기기증은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긍정적 보도가 많아져야 한다.

또 영화, 드라마에서 장기기증 순위 조작이나 장기매매 같은 잘못된 내용이 너무 쉽게 다뤄지는 것도 문제다. 장기이식 관련 내용에 대한 제작 가이드라인이 필요해 보인다. 음주나 흡연 장면이 드라마 등에서 퇴출된 것처럼 말이다. 이 같은 노력이 더해져 새해에는 생명나눔의 불씨가 다시 지펴지고 활활 타오르길 기대한다.

민태원 사회부 부장대우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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