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임성빈] 포용사회와 성탄의 정신 기사의 사진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는 다음 같이 주장한다. “오늘날 전 세계의 법과 질서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존재는 신과 신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계획을 계속해서 믿는 사람들이다. 신을 두려워하는 시리아는 세속적인 네덜란드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곳이다.” 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신본주의에 대한 거부 이후 세상은 인본주의를 대안으로 채택했다. 하라리의 주장에 따르면 “인본주의는 몇 백 년 동안 세계를 정복한 혁명적인 새 교리이다.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는 인류를 숭배하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서 신이 맡던 역할, 불교와 도교에서 자연법이 맡던 역할을 인류에게 요구한다. 무의미한 세계를 위해 의미를 창조해 보라. 이것이 인본주의가 우리에게 내릴 제 1계명이다.”

사실 지난 수세기에 걸쳐 인본주의는 인간을 의미의 최종 원천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곧 인간은 어떠한 외부적 권위가 아닌 이성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자신의 느낌과 욕망에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이 방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에서 길로비치와 로스는 “여러분은 운전을 하면서 당신보다 느린 사람은 멍청이고, 당신보다 빠른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하여 인본주의적 삶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고 여긴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이라 부른다. 적어도 자신은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본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집단 안에서 작동하였을 때 훨씬 큰 파괴력을 가진다.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자기들과 마찬가지로 특정 대상을 바라보며, 또한 같은 인식을 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들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학자들은 이것을 ‘허위합의 효과(false-consensus effect)’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을 신학적으로 해석한다면 라인홀드 니버의 죄론, 특히 비도덕적 인간과 더욱 비도덕적 사회론과 맥을 같이한다. 인간은 개인적으로도 자기중심성으로 대표되는 죄인이지만, 집단으로서는 더욱 엄청난 죄를 범하게 되는 경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종차별주의, 국가주의, 닫힌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등이 그것들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정과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회구성원 중 누구도 배제와 소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포용사회를 향한 비전은 매우 긍정적 흐름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 사회적 공동선을 꿈꾸는 신앙인들이 앞장서서 포용적 공동체를 이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소박한 실재론과 우리의 주장만이 진리라는 허위합의 효과는 포용사회로 나가는 데 있어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다. 참된 포용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겸손한 실재론에 근거해야 하며 허위합의가 아닌 진리를 추구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연대만이 정의와 평화의 길에 더욱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성탄의 계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의 몸을 입고 인간이 되신 자기 비움의 삶을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이다. 구원과 평화의 역사는 하나님이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임마누엘, 곧 자기 백성과 ‘함께’하심으로 이뤄졌다는 그 사실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회적 공동선을 향한 포용사회 실현을 위하여 인류가 공유하여야 할 태도와 자세, 즉 사랑임을 새삼 마음에 새기는 2018년의 성탄절이 되길 소망한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임성빈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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