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정현수] 이제 나가서 들어봅시다 기사의 사진
공무원 도시라 부를 만한 세종시에 1년6개월째 파견돼 살고 있다.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이 죄 공무원 일색이다. 취재원과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를 맺으며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라는 선배들의 가르침이 있었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매 점심 저녁을 함께하며 얼굴을 맞대다 보면 어느새 그들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또 가끔은 공무원들만 사는 작은 섬에 고립된 듯한 느낌도 든다.

공무원들도 비슷한 생각인가 보다. 중앙부처의 한 간부는 신입 사무관이 들어오면 주중 하루쯤은 서울로 보낸다고 한다. 업무가 따로 있어서가 아니고, 세상 돌아가는 걸 보고 오라는 취지란다. “다른 일하는 친구를 만나든, 하다못해 그냥 지하철에서 오가는 사람들이라도 보고 오라고 한다. 청사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정책만 보다 보면 현장과 괴리되기 십상이다”고 했다. 매일 조간을 밑줄 그어가며 읽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다. 격무에 시달리는 부처 공무원들이 신입 사무관처럼 ‘세상 구경’을 다니긴 어려우니 신문을 통해서라도 현장을 보려는 노력일 게다.

하지만 더러는 현장과의 단절을 자초하는 경우도 있다. 국민연금 정부안이 발표되기 전에 그간 정부가 논의한 안들을 취재해 보도하려던 적이 있었다. 꽁꽁 닫힌 밀실 속에서 오간 검토안들을 어렵사리 그러모은 뒤 마지막 확인차 담당 간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대뜸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기자를 압박했다. 정부가 생각하는 안들을 공개하고, 여론의 반응을 살필 기회가 될 것이라 맞받았지만 도무지 설득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그 혼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며칠 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국민연금 개편안을 보고받은 뒤 문재인 대통령은 재검토를 지시했다. 재검토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였다.

비단 정부 부처만의 문제는 아니다. 상고법원에 매달리던 양승태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목소리만 골라 들었다. 상고법원 설치 논의에 정작 국민들이 배제돼 있다는, 나름 품을 들였던 여론조사 기사는 주요 매체에 관련 기사가 쏠린 데 불만을 가진 중소 언론사의 객기쯤으로 치부해 버렸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던 사법부는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당시 사법부가 내걸었던 소통이라는 기치가 무색해지는 장면이었다.

지금 현장 목소리에 가장 귀 기울여야 할 조직은 아마도 최근 출범한 2기 경제팀일 것이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1기는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주력했었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내걸었던 새 정부의 첫 경제팀인 만큼 그동안 숙제처럼 여겨졌던 많은 과제를 그야말로 쉼 없이 밀어붙였다. 최저임금은 올랐고, 근로시간은 줄었다. 미뤄 걱정하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우려는 그만큼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는 중이다. 명과 암이 꼬리를 무는 형태로 말이다. 최저임금이 올라 어떤 근로자들의 월급봉투는 두꺼워졌지만 그만큼 줄어든 일자리에 타격을 받는 실직자도 생겼다. 평균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그만큼 사람을 더 뽑겠다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에 매진한 만큼 혁신성장 타이밍은 뒤로 밀렸다. 쏘카 이재웅 대표는 혁신성장본부 공동본부장직에서 물러나며 “혁신성장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씁쓸한 사퇴의 변을 남겼다. 최근 취재차 찾았던 울산과 경주 지역 제조업 하도급업체들은 방향타를 상실한 배처럼 제조업 경기 둔화 폭풍에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홍남기 부총리의 2기 경제팀은 더 현장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새 정부의 정책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매주 다양한 경제주체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듣겠다는 그의 취임 일성은 그런 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시장 수용성을 고려하겠다는 답변에도 기대를 건다. 기자는 행여 바쁜 공무원들을 위해 더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는 점을 명심하겠다.

정현수 경제부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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