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양기호] 강제징용의 합리적 해법 기사의 사진
지난 10월 말,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을 둘러싸고 한·일 관계가 다시 냉각기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 대법원은 일본의 신일철주금, 미쓰비시중공업에 의한 강제징용과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각각 8000만~1억5000만원의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와 기업, 매스컴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 측 주장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끝났다는 것이다. 일단 승소판결을 받은 원고단은 일본 기업이 보상을 거부할 경우 국내 재산에 대해 곧 압류할 작정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규모를 늘려서 공동 소송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 지역이나 대만, 동남아까지 연대해 일본 정부·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개인청구권 보상책임이 현실화될 경우 양국 간 포괄적 경제협력으로 해결해온 전후처리가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나 언론은 삼권분립의 원칙하에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개인청구권이 살아있고, 불법에다 차별적인 강제동원에 시달린 피해자에게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피해자들이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전후보상을 위해서 싸워왔고 대부분 피해자가 사망한 점, 한·일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은 포기했지만 개인청구권이 남았다고 공식 인정한 점, 한때 피해자와 화해의사를 밝힌 일본 기업 등의 정황을 고려할 때, 일본 측의 한국 비판은 자제돼야 한다.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며, 피해자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밝힌 한국 정부의 입장은 매우 적절하다.

그러나 한·일 관계와 사법부 판결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한국 정부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피해자 구제가 가장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면 된다.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개인보상을 실행할 경우 기업의 도덕성과 이미지 제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들이 엄청난 이익이 걸린 한국 시장에서 발 빼기는 무척 어렵다.

물론 일본 정부와 기업은 개인보상이 절대 불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면 양국 간 대화와 소통이 불가결하다. 한국 측은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보상하도록 일본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일본 국민의 혈세인 청구권 자금 3억 달러와 별도로 일본 정부에 진상조사와 유골 반환 등 성의를 촉구해야 한다. 전전 강제징용으로 부당한 이득을 얻고, 한·일 수교 후 6000억 달러의 엄청난 무역흑자로 돈을 벌어들인 일본 기업은 당연히 보상의무가 있으며, 대법원 판결에 따라야 한다.

한국 정부는 먼저 청구권 자금을 받은 국내 16개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하고 한국 정부도 참가하는 기금을 만들어 일본 측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미 포스코가 60억원을 출연한 ‘일제 강제동원피해자 지원재단’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본 기업도 남은 12건 소송까지 감안해 자발적으로 기금 출연에 참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과 한국 기업, 한국 정부가 3자간 공동기금을 조성하여 피해자들에게 개인보상을 추진할 수 있다. 동시에 사전 화해 방식으로 추가소송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한·일 기업이 주체가 되고, 양국 정부가 상징적으로 참여하는 2+2 기금을 설립해야 할 것이다. 적절한 시점에 2005년 이후 제2의 민관위원회를 설치하여 향후 전체적인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로드맵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관위원회는 강제징용과 일본군위안부 등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진상조사, 피해자 구제와 지원 방식 검토, 기억과 추념을 포함한 연구 학술사업을 검토하고 제언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한·일 정부와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지지를 받아 최선의 해법을 찾기를 기대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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