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용만 (1) 실탄 2발이 급소 피한 건 전우의 기도 덕분

전쟁으로 가족 잃고 홀로 남으로… 17세 때 국군 자원입대 총상 입어, 5공 때 아픔 있었지만 은혜로웠던 삶

[역경의 열매] 이용만 (1) 실탄 2발이 급소 피한 건 전우의 기도 덕분 기사의 사진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85년 인생을 회고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하나님 은혜의 강물이 흘러 오늘에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한국전쟁 때 만 17세로 국군에 자원입대해 어깨와 척추에 총상을 입었다. 어깨의 총알은 빼냈지만 척추의 탄환은 그대로 남아있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의료진들이 지금도 놀란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씩 한다. “당신은 럭키 가이군요.”

단 몇㎜만 총알이 빗나갔어도 신경을 건드려 하반신이 마비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위험 때문에 제거 수술을 하지 못한다. 왼쪽 어깨에 박힌 총탄도 심장과 한 뼘 거리였다. 군대 막사에서 동료가 노획한 소련제 권총을 잘못 겨눠 귓불 옆으로 총알이 스쳐 지나간 적도 있다. 그러면서 나는 깨달았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구나. 당시 나는 미군 2사단 38연대 록 레인저 중대에 배치된 국군 수색대였다. 미군과 인민군 사이에서 적정을 수색하고 적을 유인하는 작전을 했다.



매일 밤 막사에서 잠을 청할 때 옆자리 이언상 전우는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했다. 본인과 가족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가 찬송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를 부르면, 옆에서 나는 “며칠 후, 며칠 후 검정 콩알 먹고 죽으리”라고 놀렸다. 그땐 예수를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실탄 2발이 급소를 피한 건 매일 밤 간절히 두 손을 모은 전우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주신 것이라고.

내 이름은 본래 이승만(李承萬)이다. 용만(龍萬)이가 아니다. 해방 전까진 모두 나를 승만이라 불렀다. 1933년 8월 29일 38선 이북이었던 강원도 평강군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엔 이름이 괜찮았는데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부터 괴로움이 시작됐다. 연일 “이승만 김구 타도!”가 끊이지 않았다. “이승만 김구 타도! 스탈린 원수 만세, 김일성 장군 만세!”가 공식 구호였다.

부친은 생각이 깊으셨다. 하루는 나를 불러 “승만아, 아무래도 이름을 잠깐 동안이라도 바꾸는 게 좋겠다. 승용이로 할래, 용만이로 할래?” 항렬자가 ‘승’자여서 되찾을 이름과 헛갈리지 않게 ‘용만’을 선택했는데, 남한에 넘어와서도 이승만 대통령 때문에 영영 이름을 되찾지 못했다. 이름뿐만이 아니다. 전쟁으로 가족들을 잃었다. 미군의 융단 폭격으로 어머니와 동생이 방공호에서 폭사했다. 1950년 10월 우리 집을 불과 300m 앞에 두고 인민군의 기관총 공격을 받아 남한으로 향했다. 혈혈단신 남한으로 내려와 국군에 입대했고 총상으로 명예제대한 후 내 힘으로 대학에 갔다.

1962년 관료 생활을 시작해 재무부 이재국장을 거쳐 차관까지 역임했는데 1980년 5공화국 권력층의 친인척에게 찍혀 옷을 벗었다. 너무도 분했다. 경기도 의정부 암시장에서 소총을 구입해 복수한 뒤 세상을 뜨자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주님이 만류하셨다. 젊었을 때는 무서운 것 모르고 나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게 아니었다. 은혜의 강물이 흘러 오늘까지 이르렀다. 은혜의 첫 단추는 부지런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약력=1933년 강원도 평강군 출생, 51년 육군하사 명예제대, 59년 고려대 법대 행정학과 졸업, 62년 내각수반 기획통제관실 계획관, 71년 재무부 이재국장, 77년 재무부 재정차관보, 80년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차관), 85년 신한은행장, 88년 외환은행장, 90년 은행감독원장, 91년 재무부 장관, 2009년 대통령 자문 국민원로회의 위원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의 ‘역경의 열매’ 회고록은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의 저작물(이용만 평전-모진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인생 이야기, 21세기북스, 2017)을 바탕으로 추가 취재를 통해 작성된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만 평전’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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