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고세욱] 황의조·오지환 선발의 희비 기사의 사진
지난 22일 오후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홍명보 자선축구경기’를 봤다.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팀과 K리그 올스타팀 간의 자선 경기다. 개그맨과 여자 프로선수들까지 뒤섞여 뛰며 재밌는 쇼처럼 진행됐다. 자선무대임에도 체육관은 관중들로 꽉 찼다. 특히 10, 20대 여성 팬들이 많아 축구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 경기 시작 전 소아암을 극복한 한 어린이가 매치볼을 전달했다. 홍명보장학재단이 16년째 자선축구대회 수익금으로 소아암 환우들을 지원해온 점을 떠올리게 한 뭉클한 순간이었다. 축구 인기가 어느덧 감동으로 승화됐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한국 축구에 올해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6월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가 신호탄이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놀라운 경기력으로 금메달을 따낸 것은 올해 축구의 하이라이트였다. 빠른 패스와 강한 압박, 달라진 골 결정력을 장착한 벤투호의 등장은 대표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베트남 축구 역사를 쓴 박항서 감독의 활약상은 팬들에게 많은 자긍심을 심어줬다.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남자 선수상을 받은 아시안게임 득점왕 황의조의 소감은 축구 안팎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한국 축구가 더욱 뜨거워지는 걸 느낀다.”

축구와 함께 대표 인기 스포츠인 야구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최근만 해도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 사퇴, 승부조작 폭로 등 잿빛 소식으로 가득했다. 자선축구와 박항서 베트남 대표팀 감독의 귀국으로 축구팬들이 들썩이던 지난 주말, 포털의 야구란에 걸린 주요 기사들 중 하나의 제목은 ‘정운찬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 사퇴 촉구’였다. 올해 프로야구 관중 수는 5년 만에 감소했다.

올해 ‘축구 환희, 야구 몰락’을 가져온 터닝포인트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체육인들이 아시안게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 ‘황의조·오지환(박해민 포함) 발탁과 리더십 차이’가 축구, 야구의 희비를 갈랐다고 한다.

김학범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감독이 황의조를 택했을 때 팬들의 반발은 극심했다. 김 감독과 황의조가 과거 프로팀 사제지간이었다는 이유로 ‘인맥축구’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황의조 퇴출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김 감독은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팬들의 이해를 구했다. “나는 학연이나 의리로 축구 하는 사람이 아니다. 믿어 달라.” 그리고 아시안게임 첫 경기부터 황의조를 원톱 공격수로 중용하며 신뢰를 표시했다. 이후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만약 황의조가 그때 대표팀에 뽑히지 않거나 중용되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 될 뻔했다.

오지환의 야구대표팀 선발은 그때나 지금이나 ‘신의 악수(惡手)’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오지환의 경우 병역기피 의혹이라는 도덕성에 대한 팬들의 비판이 거셌다. 지명도가 낮은 황의조의 발탁에 따른 축구팬의 정서적 반발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럼에도 선동열 감독은 오지환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당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선발 이후였다. 오지환은 아시안게임 3경기 두 타석에 나간 게 전부였다. 축구와 달리 대부분 야구 출전국이 아마추어 수준임에도 오지환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감독 스스로 선수를 못 믿는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야구대표팀이 보여준 불통과 불신은 축구의 대응과 너무 달랐다. 후폭풍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야구의 파국은 예정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황의조의 꾸준한 성장, 대표팀의 일관된 경기력 등 축구의 인기 토대는 안정적으로 쌓이고 있다. 반면 야구의 내상은 예상외로 커 반전이 쉽지 않아 보인다. 흥행에 대한 기대는 둘째치고 내부의 불신을 해소하는 게 새해 야구계의 선결 과제가 됐다. 내년 이맘때 ‘야구가 2019년 한국 사회에 희망이 됐다’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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