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이승우] 그 다음은? 기사의 사진
소설책의 마지막 장을 덮거나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를 올려다보면서 “그 다음은?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데?” 하고 질문하곤 한다. 서사 작품에 대한 올바른 감상법이 아닌 줄 안다. 현실에서 일어나거나 일어날 수 있는 무수하게 많은 사건과 행동과 현상들 가운데 일부를 임의로 취해 작가는 인과 관계를 엮어낸다. 소설이든 영화든 공교한 구성의 과정을 거친 모든 종류의 이야기들은 고유하고 완결된 세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마땅하다. 게다가 소설이나 영화의 마지막에 대고 “그 다음은?” 하고 묻는 것은 소설이나 영화가 아무리 현실 세계를 반영하고 현실 세계에 대해 의미 있는 발언을 하는 장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현실과 허구를 구분 못하는 수준 낮은 독자라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변명삼아 말하자면, 소설이나 영화에 대한 우리의 반응들은 대개 그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사건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사건이 상기시키는 현실을 향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순을 한탄하거나 불의에 분노하거나 또는 자기의 삶을 반성한다. 이야기가 현실에 참여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소설이나 영화가 말하는 이야기 이후를 향한 질문이 그렇게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다.

가령 사랑하는 두 사람이 주변의 반대와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하면서 끝나는 영화를 생각해 보자. 작가는 창작상의 어떤 의도에 의해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데까지만 쓰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결혼 후의 그들의 생활은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 그랬을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의 결말은 바꿀 수 없다. 완결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 속 인물의 삶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인물들을 현실로 불러내면 어떨까? 결혼은 소설의 끝이지만 인생의 끝은 아니다. 결혼을 했으니 결혼 상태로 사는 생활이 있을 것이다. 그 이후 그들은 어떻게 살까? 10년 후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작가가 마침표를 찍은 이야기의 마지막처럼 여전히 행복할까? 그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상상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 경험이다. 만들어진 이야기는 현실을 간섭하지만, 또 현실에 의해 간섭 당한다.

어떤 시간을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삼느냐에 따라 행복한 결말이 되기도 하고 슬픈 결말이 되기도 하는 것이 서사 작품이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 해의 끝자락에서 한다. 전반전에 0대 3으로 지고 있다가 후반전에 4대 3으로 역전하는 경기를 보았다. 헤어지기 싫어서 결혼한 사람이 헤어지지 못해 괴로워하는 경우는 더 흔하다. 크든 작든 행복한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온종일 기쁘기만 한 날도 없고 온종일 슬프기만 한 날도 없다. 어느 장면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해피엔드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플롯의 문제이다.

문제는 소설이나 영화와는 달리 우리의 삶이 임의적 플롯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흐르는 시간의 한 지점을 막고 여기까지가 내 이야기야, 할 수 없다. 그 후의 이야기도 역시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내가 나오는 이 소설은 내가 쓰는 것 같지만 나 혼자서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계획하고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를 상대해야 하고 내가 관여할 수 없는 환경과 제도와 상황을 견뎌야 한다. 알 수 없는 이유와 요인에 의해 계획과 의지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사람은 자기 인생을 혼자 쓴다고 주장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결말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나쁘다고 좌절할 수 없고, 지금 좋다고 으스댈 수 없다. 한순간도 허투루 살 수 없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루의 작가 바르가스 요사는 소설을 지망하는 젊은이를 격려하기 위해 ‘지금 훌륭한 작가도 한때는 습작생이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의 문장에 이런 말을 덧붙일 수 있다. ‘지금 훌륭하다는 것이 곧 내일도 훌륭할 거라는 보장은 아니다.’

이승우 조선대 교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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