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내 마음을 부탁해” 기사의 사진
현대인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는 공감의 기술을 잃어버렸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만 정작 살아 있는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져간다. ‘전쟁’을 생각하면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투 장면을 떠올리고, ‘기아’를 생각하면 아프리카의 배고픈 아이들을 떠올린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천편일률적인 고통의 이미지에 어느새 익숙해졌고 감수성도 무디어졌다.

젊은 세대들은 ‘화가 나요’ ‘기분이 좋아요’ ‘힘들고 지쳐요’ 등의 감정 표현을 이모티콘으로 대신하지만 ‘진짜 감정’은 숨긴다. 또 SNS에 일상을 올리지만, 어찌 보면 ‘진짜 나’는 빠져 있다. ‘내가 이러했으면 좋겠다’는 유사 자기표현을 하는 셈이다. 연애나 여행 등의 설레는 감정은 관찰 예능 프로그램으로 경험하고, 페이스북의 ‘대신 화내주는 페이지’ ‘대신 욕해주는 페이지’ ‘대신 뻔뻔한 페이지’ 등에 쌓인 감정을 쏟아내기도 한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와 소비 트렌드분석센터가 함께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19’에 의하면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미디어에 의존해 온 젊은 세대들이 ‘감정대리인’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종국에는 감정관리산업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감정대리인이란 사람들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는 사람이나 상품 서비스를 의미한다.

과연 이런 것들이 우리 마음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을까?

감정 소비 트렌드에 휩쓸리다보면 자신의 감정에 소홀해지고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잃어버릴 수 있다. 행복하고 편안하며 즐거운 감정만 추구하면 부정적이거나 슬픈 감정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약해질 수 있다. 이는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희로애락은 누가 대신 느껴줄 수 없다.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다. 본능적인 감정을 타인에게 맡기다 보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자신의 감정을 세부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스트레스를 잘 견딘다. 우울증이나 사회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감정 구분이 모호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감정을 그냥 ‘기분이 안 좋다’는 것 이상으로 구분할 줄 아는 것만으로 스트레스에 강해지고 두려움을 극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정리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감정의 외주를 줄이고 나 자신을 돌보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내 마음이 평안한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점검해본다. 감정의 이름표를 하나씩 붙여주며 감정의 정체를 알아본다. 예를 들면 거미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눈앞에서 거미를 보았을 때 ‘못생기고 끔찍하게 생긴 거미를 보니까 소름이 돋고 몸이 떨리고 구역질이 나지만 한편으로 신기하고 흥미롭기도 하다’란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세분화할수록 공포를 잘 극복할 수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란 감정이 꼭 필요한 감정이라고 이야기했듯, 삶이 더 풍요로워지려면 부정적인 감정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 마음 챙김에 대한 조언이다.

“자신의 감정들을 좋거나 나쁘게 판단하지 않고 무시하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이나 생각 역시 있는 그대로 또렷이 바라보는 연습이 되어 있을 때 자신이 빠져 있는 고통에 대해서도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다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에만 빠져서 그것들을 증폭시키고 거기에 휩쓸려가는 것은 피해야 한다.”(박진영의 ‘내 마음을 부탁해’ 중에서)

우리는 만들어진 감정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다. 주변의 다양한 정보를 통합해 감정을 만들어간다. 자신의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나는 이럴 때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 하고 알아갈 때 나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고 나아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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