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에서] 이런 리스트, 저런 리스트 기사의 사진
리스트는 명단이나 목록을 뜻한다.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그런데 리스트가 블랙, 화이트, 버킷, 크리스마스와 결합하면 뜻이 확 달라진다.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를 연상시킨다.

블랙리스트는 불이익을 주거나 제거하려는 인물들의 명단이다. 기업이나 제품도 대상일 수 있다. 올해는 유난히 블랙리스트가 국내 신문 지면을 크게 장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곳곳에서 블랙리스트 문제가 불거졌다.

박근혜정부를 비판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기 위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관여한 혐의로 박 전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정무수석을 포함한 많은 인사들이 처벌을 받았다. 보수단체 부당 지원과 관련한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김 전 실장은 징역 1년6개월을, 조 전 수석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사법부도 블랙리스트 홍역을 앓고 있다. 검찰은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여러 차례 법원행정처를 압수수색하면서 고강도로 사법부를 압박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작성한 사실도 확인했다. 전직 대법관들을 소환조사한 검찰의 칼끝은 시나브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향하고 있다.

영화 ‘1987’에도 블랙리스트가 등장한다. 치안본부(경찰청) 대공수사처장이 박종철군 물고문치사사건을 은폐하고 군사정권의 운명을 연장하기 위해 ‘김정남 간첩단 사건’을 획책한다. 유력 정치인 김영삼 김대중까지 엮으려고 블랙리스트인 조직도를 만든다. 김일성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자금 지원을 받아 남한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 음흉한 계략을 꾸민 것이다. 박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대공수사처장의 암수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화이트리스트는 살려야 하거나 지원이 필요한 인물과 기업의 목록을 말한다. 페이스북은 기업을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차별 대우했다. 자사가 선호하는 화이트리스트 기업에는 회원 개인정보 접근권을 준 반면 경쟁사를 비롯한 블랙리스트 기업에는 접근권을 차단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민주노총 소속 S사 노조의 요구로 S사가 조합원의 자녀와 친인척을 채용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고용세습 화이트리스트 문건’을 공개했다. 김 전 비서실장과 S사 노조의 경우는 화이트리스트를 악용한 사례에 속한다. 자유한국당은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첩보 리스트를 공개했다. ‘김태우 리스트’가 파괴력을 가진 정국 뇌관으로 작용할지 자못 궁금하다.

‘버킷 리스트’와 ‘크리스마스 리스트’처럼 실천하고 싶은 리스트도 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적은 목록인 버킷 리스트는 동명의 영화로 널리 알려졌다. 회사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버킷 리스트 실천하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크리스마스 리스트’는 미국 작가 리처드 폴 에반스의 소설이다. 주인공 제임스 키어는 ‘부동산업계의 거물, 자동차 사고로 사망’이라는 자신의 부고 기사를 보게 된다. 동명이인이 사망했는데, 자신이 죽었다는 오보가 난 것이다.

부고 아래 달린 악성 댓글을 보고 키어는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인다. 충격과 실의에 빠졌다가 지난 잘못을 깊이 뉘우친 키어는 여비서에게 자신이 상처를 준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지만 마침내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변신한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용서와 사랑, 나눔이라고 이 책은 웅변한다. 해마다 자신과 가족의 크리스마스 리스트를 만들어 실천하면 어떨까.

염성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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