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송용원] “응답하라 1977” 기사의 사진
다들 그립다고 말한다. 건물도 초라했고 교인들 대부분 가난했어도 정겹고 살갑던 과거 우리 한국교회 풍경을. 어린 시절 고향 제주의 주일학교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 새벽기도를 나간 때는 1977년.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한 달 내내 다녔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교회에 가서 기도를 마치면 선생님이 생전 처음 보는 스탬프 도장을 꾹꾹 눌러 찍어주셨다. 우표 수집 못지않았다. 그걸 모으는 재미로 새벽기도를 다녔다. 그때 우리들은 새파란 커버의 포켓용 기드온 성경과 계절별로 나오던 공과공부 교재만 손에 들고는 교회와 주변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그때 하나님은 온 천지에 계셨다. 계시지 않은 곳이 없었다. 추운 겨울 시장에서 호빵을 하나 사면 김이 모락모락 났다. 모세의 구름기둥이 따로 없었다. 상인들이 피워놓은 모닥불 가운데 갈 곳 잃은 베드로가 서성였다. 어디를 가든 고향의 풍경은 성경의 무대였다. 나사로와 부자라는 인형극을 볼 때가 압권이었다. 뜨거운 지옥 불에 떨어지는 부자를 보며 내 또래 모든 아이들은 지옥의 현현을 보았다. 우리도 같은 신세가 된 것인 양 비명들을 질러댔다. 12월이지만 전혀 춥지 않았고 후끈했다.

가끔 이러다가 하나님이 안 계시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안 믿는 학교 친구들이 주로 그런 걱정을 해주었다. 그래도 “흰 구름 뭉게뭉게”나 “예수께로 가면” 같은 찬송을 몇 곡 부르고 나면 성탄절 특집으로 나오던 주말의 명화들, 찰턴 헤스턴이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던 ‘십계’, 내가 제일 좋아하던 앤서니 퀸이 순교하던 ‘강도 바라바’, 로마 대화재를 처음 알게 해준 ‘쿼바디스’, 그리고 ‘벤허’의 생생한 전차 경기까지 보고 나면 언제 하나님의 존재를 걱정했느냐 싶게 친구들과 무화과나무를 돌며 술래놀이를 했다.

채 익기도 전에 다 따버리는 녀석들 때문에 한 번도 열매를 먹어보지 못한 교회 마당의 무화과나무, 그러나 저주도 받지 않아 마르지도 않는 무화과나무는 꿋꿋이 서서 우리가 자라는 걸 지켜보았다. 예수님은 “미쿡 선교사님”처럼 멋있게 생기셔서는 방금 전에 거길 지나가신 것 같았다. 그때 하나님은 어떤 것도 우리들에게 숨기시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최소한 나중에는 다 보여줄 거라 손가락을 거시는 듯했다. 성경에서 믿겨지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 하나님 만드신 세상이니까. 동화 같은 창조 이야기도 쉽게 믿었던 어린이….

그러다 대학에 진학해서 서울에 와보니 세상에나, 교회 다닌다 하는 선배들이 술도 마시고 담배도 곧잘 피우는 게 아닌가! 서울 사람들은 예수 믿는다 하면서도 욕심들이 많아 보였다. 잘난 체하는 모습들이 부럽기도 했다. 갓 스물 넘은 촌놈 눈엔 그랬다. 대학에서 이런저런 과목들을 수강하고 미로 같은 서울 길에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열등감도 커져갔다.

어린 시절 자유자재로 사용하던 탐지기. 성경의 오브제를 보여주던 내 망원경. 그분이 온다고 알려주던 나만의 무전기는 먼 고향땅에 두고 온 고물이 된 듯싶었다. 서울 사람들처럼 나도 엿장수 마음대로 살면서 엿 바꿔 먹었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유년시절 등 뒤에 항상 어른거리시던 하나님. 지근거리에 계시던 그분은 이젠 신학 책을 머리 싸매고 읽어도 아련하기만 하다. 나이를 먹으면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하니 그때까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하지만 이젠 다시 듣고 싶다. 풍금 따라 부르던 그 시절 찬양을.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그 말씀을. 한국교회가 세상 속에 닳고 닳아 영악해진 이 세대를 어린 시절 모습으로 다시 주님 앞에 뛰놀게 하는 임마누엘의 시공간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태복음 11장 25절)

송용원 은혜와선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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