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봉영식] 외로운 제갈공명과 김정은 기사의 사진
누가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냐고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식객’의 허영만 화백이나 ‘미생’의 윤태호 화백,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 화백을 꼽을 것 같다. 이분들 이전 한국 만화계에는 고우영이라는 독보적인 인물이 있었다. 2005년 세상을 떠난 고 화백은 특유의 해학과 풍자를 마음껏 발휘한 ‘수호지’ ‘초한지’ ‘삼국지’ ‘열국지’ 등 중국 고전 시리즈로 유명했다.

1980년대 초반 일간스포츠에 연재됐던 ‘삼국지’의 인기는 대단했다. 고우영 삼국지를 즐겨 본 대한민국 중년 남자라면 돼지 동탁, 사나이 조조, ‘노란 샤쓰 입은’을 떼창하는 황건적, 결핵환자 제갈공명 등의 이미지를 기억할 것이다. 고 화백은 여자 캐릭터를 섬세하고 가녀리게 그린 것으로 유명했다. 수양아버지 왕윤을 몰래 사랑했던 초선이 여포와 동탁을 이간질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토리가 연재된 날, 많은 남자 회사원들이 포장마차에서 소주병을 기울였다는 전설도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고 화백만의 독특한 해석은 제갈공명이 라이벌 관우를 의도적으로 소외시키고 결국 형주에서 고립되어 죽게 만들었다는 대목이다. 소설가 이문열이 자신의 ‘삼국지’ 소설에서 이러한 추론을 인정하면서 고 화백의 심리 묘사가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이전에 필자는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어떤 점이 눈에 띄느냐는 질문을 받고, 김정은 주위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연형묵 김용순 강석주 허담 김기남 등 북한 인사들의 이름이 남한 시민의 귀에도 익숙했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교체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운구차를 호위했던 7인방 중 군부 4인방(이영호 김영춘 김정각 우동측)이 사라졌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은 공개처형 당했고, 이복형 김정남은 말레이시아에서 살해됐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최룡해 리선권 김영철 김여정이 김정은 곁에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에서 최룡해 부위원장의 위상은 불투명하다.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의 역할은 대북 경제 제재가 완화되어 남북 경제 협력이 가동되기 전까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미 핵 협상을 맡고 있는 김영철 부위원장은 협상전문 외교관이나 핵미사일 전문 관료도 아니다. 도발과 위협, 그리고 남북 관계가 악화되거나 한반도에서 긴장 상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는 데 평생을 보낸 총정찰국장 출신이다. 1988년생 김여정 부부장이 오라버니를 정성으로 보좌하고 김정은의 절대신임을 받고 있을지 모르나 30대 초반에 정국 운영이나 외교안보정책에 풍부한 경험이 있을 수 없다.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 공고화와 국가 운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많은 사람을 쳐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의 주위에 이제 사람이 남지 않게 됐다. 남아 있는 사람에게 마음 놓고 일을 맡기거나 전폭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고우영 만화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은 위나라 정벌에 나서는 길에서 하늘을 보며 ‘아아 외롭다. 이럴 때 조자룡, 관우 한 명만 곁에 있다면!’ 하고 한탄한다. 타계한 주군 유비의 천하통일 유지를 실현하고자 절치부심하던 제갈공명은 대업 완수가 워낙 힘에 부치자 자신이 그렇게 제거한 관우조차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결국 제갈공명은 234년 5차 북벌 중 오장원(五丈原) 진중에서 54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마지막으로 촉군 진중을 사열하던 제갈공명은 ‘유구’(하늘은 저리 높은데 사람 목숨은 너무도 짧다)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천하의 제갈공명도 혼자 힘으로는 대업을 이루기에 역부족이었다. 김정은이 ‘삼국지’를 한 번 더 숙독하고 제갈공명의 지혜를 얻되 제갈공명의 실수를 피하면서 지속 가능한 평화와 공동 번영의 남북 관계,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정상적인 미·북 관계, 그리고 북한 경제 번영의 첫걸음을 내딛는 새해를 준비하길 기원한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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