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홍규] 사람의 얼굴 기사의 사진
마을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삼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다음 정류장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앞쪽 자리에 앉았던 노부인이 졸다가 깼는지 화들짝 놀라며 엉거주춤 일어서더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여기가 고등학교?” 하고 물었다. 반대쪽 창가 자리에 앉았던 중년의 부인이 몸을 외로 틀며 “맞아요. 다음이에요. 위험하니까 앉아계세요” 하고 답했다.

신호가 바뀌어 버스가 출발했다. 창밖을 내다보던 노부인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 뒤로 두 사람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여기 아닌데.” “고등학교냐면서요.” “동산고말여.” “그건 저쪽이었어요.” “그럼 그렇다고 말해야지.” “제가 어떻게 알구요.” “여기라면서!” “도래울고냐고 하신 줄 알았죠.” “내가 언제 그랬어?” “고등학교냐면서요.” “동산고말여.” “그건 저쪽에 있다니깐요. 이미 지나왔어요.” “그럼 지나기 전에 말했어야지!” “제가 어떻게 알고요?”

반환점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승객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그들 가운데 눈살을 찌푸린 이는 없었다. 외려 두 사람의 말다툼 덕분에 마을버스 안에는 은근한 웃음이 흘러넘쳤다. 노부인만 고집이 센 게 아니라 노부인을 도와주려 했던 중년 부인의 고집도 여간하지 않아 그대로 놔둔다면 이 대화가 끝없이 되풀이될 것만 같았다. 살갑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 모녀의 다툼 같기도 했고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미운정이 속정이 된 고부 사이의 다툼 같기도 했다. 어쩌면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각자의 부모나 시부모를 떠올렸을지도 모르며 혹은 요즘 경기가 좋지 않다면서 한숨만 쉬던 자녀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렸다. 내 기억 속에서 당신은 누구보다 다정하고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성가시거나 불쾌한 일에도 화를 낸 적이 없었고 누가 찾아와 어떤 하소연을 해도 귀 기울였으며 부지런하지만 서두르지 않아 무슨 일을 하든 여유롭고 자연스러워보였다. 나는 할머니의 성품이 원래 그러려니 했기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오랜 세월이 흘러 당신이 어떤 세월을 견뎌왔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모두 아홉의 자식을 낳았으나 그중 일곱을 잃었다. 겨우 예순을 넘겨 돌아가신 이유도 가슴 속에 한이 쌓여서일 거라고 했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할머니는 한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밝고 고왔기에 당신이 어떻게 그런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는지 기이할 뿐이었다. 자식 하나를 앞세워도 그 하나를 가슴에 묻고 사는 일이 쉽지 않으련만 일곱이나 되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채 사는 삶이란 대체 어떤 삶일지. 그 뒤로 나는 누구를 만나든 그이가 드러내지 않는 고통과 슬픔을 헤아리려 애썼다. 누군가 자기만의 고통과 슬픔을 드러낸다면 실제로 그이가 겪는 고통과 슬픔은 그보다 훨씬 깊을 수밖에 없음도 알게 되었다.

마을버스는 중년 부인이 내려야 할 정류장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이는 노부인에게 마을버스에서 내리지 말고 그대로 타고 계시라고 말했다. 반환점을 돌아 다시 동산고를 지나가게 될 테니 그때 꼭 내리시라고 단단히 일렀다. 노부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알겠노라 답했고 딸의 손이라도 되듯 중년 부인의 손을 어루만졌다. 이윽고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 중년 부인은 기사에게 노부인을 잊지 말고 챙겨 달라는 당부까지 하고서야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저 중년 부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상상했다. 그이는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혀 딴 생각을 하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마을버스가 떠날 때까지 정류장에 선 채 노부인을 바라보던 그이가 내게 누구나 저마다의 슬픔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함을 상기시켰다는 사실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이 일화를 떠올리는 건 그때 보았던 두 사람의 얼굴이 사랑하던 이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고 그런 얼굴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무심하지 않은 한 해가 되기를 바라서이기도 하다.

손홍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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