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이 밝았다. 새해 벽두에는 기대와 희망을 가질 일이다. 하지만 현실이 주는 중압감을 부인하기 힘들다. 나라 안과 밖에서 몰려오는 비구름이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최대 도전은 경제와 민생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휘청대다 어렵게 바닥을 찍었던 세계 경기에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제2차 대전 후 최장기 호황을 이어오는 미국 경제도 올해 말에는 침체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10년 가까운 초저금리 시대가 끝나가면서 선진국과 안전 자산으로의 자본 탈출이 빨라지고 있다.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의 환율과 금융 불안이 깊어진다는 의미다. 미국과 중국, G2(주요 2개국) 간 패권경쟁이 본격화됐다. 갈등은 장기화되고 그 영역도 무역에서 첨단기술, 금융, 군사 등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이 심판 역할을 했던 전후 국제 정치·경제 질서의 해체에 가속도가 붙었다. 전후 무역질서의 최대 수혜자의 하나인 한국에는 발밑의 지각이 흔들리는 격이다.

더 큰 도전은 내부로부터다.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심각하다. 반도체를 대체할 신성장동력이 없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열렸다고 자축할 때가 아니다. 이러다가 반짝 터치다운만 하고 다시 2만 달러로 위축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경제 실험의 파장이 깊고도 넓다.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 설계와 무모한 속도전으로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신경계와 근육이 파열되고 있다. 급격한 인건비 상승으로 기업, 장사를 하기 어렵다는데 혁신과 투자를 기대할 수 있는가.

소득주도성장 악순환 끊는 게 실용

성공적으로 경제를 운용한 나라나 시대의 경제정책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념적이지 않고 실용적이다.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다. 현 정부 정책은 정반대다. 이념과 추상으로 가득 차 있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정책을 설계하지 않았다. 검증되지 않은 소득주도성장이란 추상적 이론에 휘둘렸다. 과거 정부의 정책을 모두 친 재벌로 묶고 이것이 효과가 없으니 해답은 친 노동이라는 이분법에 빠졌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제의 경직적 시행으로 산업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이를 목표 달성 과정의 불가피한 진통 정도로 여긴다면 답이 없다. 이데올로그들의 전형적 사고방식이요, 태도다. 새해에는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 바탕을 둔 실용주의가 국정의 모토가 돼야 한다. 새로운 정책을 시행해 효과가 없으면 폐기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실용주의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기업 인력 운용에 숨통을 터주는 유연근로제 확대 여부가 그 시금석이다. 기업하려는 분위기 조성은 정부의 최소한의 책무다.

특정 집단 치우치지 않는 국정의 균형을

특정 이익집단에 치우치지 않는 국정의 중립성과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노동자는 피해자요, 대기업과 재벌은 악(惡)이라는 옛 프레임에서 속히 벗어나야 한다. 노조의 탈·불법 행위와 사적 이익편취를 기업의 불공정 행위와 경영자 배임과 같은 정도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소속의 정규직 위주 조직화된 세력만이 노동자가 아니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적 약자다. 이것이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경제의 정신에도 부합한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정세도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어렵게 이룬 남북 평화공존 기류는 이번 정부의 공적이다. 하지만 북한이 과감하게 핵무기와 핵물질 해체에 나서지 않는 한 한반도 평화와 북한의 개방개혁은 불가능하다. 북한이 현재처럼 핵무기와 미사일을 꽉 쥔 채로는 제재가 해제되고 남북 관계가 진전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주의요, 실용이다.

‘북한 몰입 외교’벗어나 균형외교로

외교안보의 터널 비전(tunnel vision·터널 속에서처럼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남북 관계에만 몰입하다 동북아는 물론 세계의 흐름과 변화를 놓칠 수 있다. 워싱턴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북한을 편든다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으며 대통령이 많은 공을 들였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않다. 대일 관계는 앞날이 안 보일 정도로 최악이다. 대통령 측근들로 채워진 4대국 대사를 전문가로 교체하는 근본적 인적 수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북한 몰입 외교’를 벗어나야 한다. 미·중·일을 모두 아우르는 고차원 방정식을 풀 수 있는 균형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새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3년차에 들어선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지지율 ‘필연적’ 하락의 법칙은 누구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하락 속도가 가파르다. 한정된 정치적 자원의 선택과 집중이 더욱 중요해졌다. 근본 문제는 대통령 말의 신뢰 위기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실제 정책에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상공인과 자동차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는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참모들도 딴소리를 한다.

대통령이 집토끼로 불리는 골수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략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의구심은 국정 신뢰도에 치명타다. 국민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집토끼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합리적 대안을 실행하는 결단력 있는 대통령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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