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용만 (8) 성가대장 맡다가 성가대 반주자와 결혼

아내의 내조로 일에만 몰두… 남덕우 장관이 초청한 식사 자리서 아내 “주일에 교회 나가게 해줘야”

[역경의 열매] 이용만 (8) 성가대장 맡다가 성가대 반주자와 결혼 기사의 사진
1991년 태국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 참석한 이용만 장로와 아내 주경순 권사.
나는 1961년 4월 13일 결혼했다. 4·19의거 1년 뒤였다. 동광교회 청년회장과 성가대장을 맡다가 성가대 반주자였던 주경순과 결혼했다. 1남 4녀를 낳아 키웠다. 아들은 내가 1951년 춘천 가리산 전투에서 총을 맞던 날과 같은 5월 11일에 태어났다.

아내를 만난 과정도 특별했다. 내가 국제우체국 김포공항 사무실에 다닐 때 그곳에 출입하던 KBS 주창순 기자와 친해졌다. 아내의 큰오빠였다. 그에게 “우리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할 사람을 찾는데 어디 그런 사람 없을까”라고 묻자 그는 “내 동생이 이화여대에 다니는데 피아노를 아주 잘 친다”고 했다. 결혼식은 교회 교인들의 축복 속에 건국대 총장을 역임한 정대위 목사님의 주례로 진행됐다. 김석홍 목사님은 가족 없는 나를 위해 친족 대표로 인사를 해줬다.



결혼할 때는 아내를 위해 야마하 피아노를 선물로 준비했다. 우표 수출로 번 돈이 있어 집을 장만해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전 아내는 학교의 연습용 피아노를 선점하기 위해 새벽 5시면 등교했다고 한다. 다른 것은 못 해줘도 결혼하면 집에서 피아노는 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아내는 집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수도여자사범대(현 세종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아이 셋을 낳은 뒤에는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부처 공무원 과장 월급보다 아내의 월급이 더 많던 시절이었다.

아내 덕분에 피아노 연주회는 열심히 따라다녔다. 한번은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가자고 집사람이 권해서 따라갔다. 중간에 답답해서 나와 어두컴컴한 계단에 앉아 있었다. 당시 이한빈 전 부총리가 들어가다가 나를 보더니 “어, 강릉에 호텔 잘 지었습디다” 하고 말했다. 나를 정주영 회장인 줄 착각한 거다. “전 정 회장이 아닌데요”라고 말하기가 뭣해서 “아, 네 고맙습니다”하고 답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나보고 정 회장과 비슷하다고 말하긴 했다. 강원도 북부 출신의 장신이면서 홀쭉한 얼굴이었던 게 비슷했다. 곰탕에 밥을 통째로 말아 먹곤 하는 모습도 닮았다. 훗날 정 회장을 산업시찰 때 만나 강릉호텔 일화를 말했더니 정 회장은 “그러면 당신이 가져”라고 말해 웃었다.

인생에서 희비와 영욕의 세월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 욕(辱)은 내가 만든 것이며 영(榮)은 아내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공직에 나가 일에 몰입해 살았기에 아침 7시 이전에 출근해 통행금지 시간에 맞춰 겨우 귀가하곤 했다. 밤샘 작업을 일주일에 2~3차례 할 정도로 정신없이 질주하던 삶이었다. 딸이 “아빠, 이화여대에 합격했어요” 하면 “그래, 잘됐네” 하고는 돌아서버리는 아버지로 살았다. 마음 놓고 일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데는 아내의 내조가 큰 역할을 했다.

재무부 시절 남덕우 장관이 고생하는 부하들의 아내들을 초청해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아내는 장관 앞에서 당차게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게 해주셔야 합니다. 주일도 못 지킬 정도로 일만 만날 시키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했다. 남 장관은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는 하나님도 용서하실 겁니다”라고 답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의 ‘역경의 열매’ 회고록은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의 저작물(이용만 평전-모진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인생 이야기, 21세기북스, 2017)을 바탕으로 추가 취재를 통해 작성된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만 평전’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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