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박상익] 윌버포스와 정치인의 반어법 기사의 사진
의회주의 발상지로 알려진 영국의 정치 수준이 처음부터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형편없었다.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는 서양 속담처럼 영국 상류층의 타락상은 가위 전설적이었다. 조지 3세의 장남인 웨일스 왕세자(나중에 조지 4세)는 동침한 여자가 7000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희대의 색마(色魔)였다. 도박 중독자였던 그의 천문학적 도박 빚은 유유상종하던 의원 친구들이 국고에서 변제해줬다. 의원들 사이에는 알코올 중독이 만연했다.

영국 정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은 ‘영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다. 1780년 21세 때 정치에 입문한 윌버포스의 첫 번째 목표는 관습의 개혁이었다. 상류사회의 덕을 세워야겠다고 작심한 그는 의회가 국가의 도덕을 만들어내는 조폐국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하수종말처리장 수준의 정치판을 1급 상수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결의였다. 윌버포스는 용의주도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고위 공직자의 과도한 음주, 음란행위 등 비도덕적인 행동을 적발 및 고발할 수 있는 법령을 선포토록 했다. 도덕성을 강조한 빅토리아 시대(1837~1901)의 시대정신은 이렇게 탄생했다.

윌버포스가 추구한 또 다른 목표는 노예제 폐지였다. 노예제 폐지는 인기 없는 투쟁이었다. 해상 강국 영국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북미 대륙으로 수송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노예무역은 그 무렵 국가 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노예무역은 이를테면 오늘날 미국의 방위산업만큼이나 제국의 경제에 중요한 비중을 점하고 있었다. 귀족, 상인 등 노예제 지지 세력은 모든 반대 목소리를 매국(賣國)으로 몰아 침묵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인은 고위직에 오를 희망을 접어야 했다. 개인적 야망을 초월한 목표와 의미를 추구하는 인물이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여론 주도층의 호의를 얻을 만큼 진정성과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대의를 추구할 수 있는 확고한 신념, 복잡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유연한 지성을 갖춰야 했다. 두 차례나 암살 위기를 넘긴 윌버포스가 그런 사람이었다. 1833년 7월 26일, 승리의 그날이 왔다. 의회는 영제국의 모든 노예를 1년 안으로 해방시키라는 법령을 포고했다. 그날 윌버포스는 침상에서 죽어가면서 이 소식을 듣고 기뻐했고, 사흘 뒤인 7월 29일 새벽 3시 운명했다. 윌버포스의 노력으로 영국은 미국보다 30년 앞서 노예제를 폐지했다.

윌버포스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납과 금의 차이만큼이나 달랐다. 정치인을 경멸하던 대중의 태도가 변했다. 윌버포스 이후의 정치인들은 도덕적으로 살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살거나, 아니면 그렇게 사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윌버포스가 우려한 대로 이는 일부 정치인들의 위선적 태도를 증가시켰다. 하지만 윌버포스로 인해 정치가 정직한 사람에게 적합한, 존경받을 만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확립됐다.

반갑게도 윌버포스를 존경하는 정치인이 한국에도 있다고 한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이다. 그의 별명은 ‘엠비(MB) 경호실장’이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을 철통 방어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권 의원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한 윌버포스의 견고한 신념과 의지가 정말 존경스럽다. 눈앞의 이익보다 옳은 길을 선택할 줄 아는 그 뚝심을 닮고 싶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권 의원은 지난해 불거진 강원랜드 채용 청탁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 그에게 반어법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반어법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속마음과 반대되는 표현을 쓰는 수사법’. 그가 철통 방어한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가훈이 정직’이라는 반어법의 모범 예문을 남긴 바 있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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