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박세환] 그래도 다시 희망을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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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선배와 함께 당시 국악중학교에 재학하던 박채원양의 사연을 보도했다. 채원이는 희귀병을 앓았지만 ‘병명’이 정확지 않다는 이유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는 편집회의를 거쳐 신문 1면에 실렸다. 다음 날 50통 넘는 전화를 받았다. 채원이를 돕고 싶다는 거였다. 순식간에 인터넷으로 4000만원이 모였다. “딸 키우는 엄마로서 마음이 아파요. 어서 일어나렴” “기적을 믿어요. 희망을 놓지 말고 힘내세요”라는 댓글 1500개가 달렸다.

신권혁 하사도 떠오른다. 2015년 8월 신 하사는 훈련 도중 M-14 대인지뢰를 밟았다. 우리 군이 매설한 지뢰였다. 당시 군 규정은 북한 지뢰를 밟으면 전상(戰傷), 아군 지뢰를 밟으면 공상(公傷)으로 처리해 치료비가 다르게 책정됐다. 신 하사의 가족은 “나라를 위해 희생했는데 차별받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보도 이후 한 가구업체는 “군인정신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신 하사에게 최신 가구 23종을 증정했다. 신 하사의 부사관학교 동기는 이메일을 보내 “같은 군인으로 가슴이 너무 아프다. 더 많이 알려 달라. 도와 달라”고 남겼다. 전역한 직업 군인인데, 신 하사의 사연이 눈에 밟혀 병원에 찾아가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6년의 기자생활 동안 타인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따뜻한 이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 김방락씨는 10년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모은 1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그는 인터뷰 자리에 낡은 모자와 오래된 점퍼를 입고 나왔다. “경비원 직업을 가진 사람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민간 잠수사 유계열씨는 세월호 참사 직후 침몰 현장을 찾아 거센 조류를 마다않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9일간 팽목항에 머물면서 직접 텐트를 치고 쪽잠을 자며 숙식을 해결했다. 그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장애를 갖고 있는 김주기씨는 매월 기초생활수급비로 받는 40만원 가운데 3만원을 푸르메재단 등에 보내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병원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어려운 형편에도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장애인을 방문해 주기적으로 목욕을 시켜주는 경찰, 탈북 청소년의 치아를 무료로 치료해주는 치과의사도 만났다.

선행은 선행을 낳는다. 서울국제학교(SIS) 김형식 이사장은 6·25 직후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수업료를 내기도 벅찬 살림이었지만 그는 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인 한 목사로부터 매달 5000환(현재 가치로 5만원 정도)을 받아 공부했다.

1966년 건국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김 이사장은 모교에 20억원을 기부했다. 장학금 전달식에서 “여러분도 내 나이가 됐을 때 규모에 상관없이 사회를 위해 보람된 일을 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가 낸 돈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또 다른 후학을 위해 받은 사랑을 돌려줄 것이다. 그렇게 선행은 대물림되고,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터다.

유독 흉흉한 일이 많았던 2018년이었다. 일부 재벌가의 갑질은 여전했고, ‘미투(ME TOO)’ 운동으로 성차별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부실 공사로 젊은 청춘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법 농단 사태로 국민적 충격이 컸고, 세금을 빼돌린 공무원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언론을 장식했다. 고용지표는 계속 하락세고, 자영업자는 살기 힘들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삶이 점점 더 팍팍해져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새해에는 다시 희망을 품는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과 새해 맞이 등산을 한 민세은 황현희양은 지난해 10월 광주 거리에서 피 흘리며 쓰러진 환자를 발견했다. 구조 요청을 한 뒤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환자를 지켰고 병원에도 동행했다. 지난달 제주도에서 여객선이 좌초하자 자기 배로 승객들을 구조한 양정환 선장 같은 의인이 올해도 곳곳에 나타날 것이다. 사회에 300억원 가까이 환원하고 떠난 황필상 박사 같은 분이 계속해서 세상을 밝혀줄 거다. 그들을 취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건 기자로서 영광이다. 그전에 나부터 다짐을 고쳐먹는다. 올해부턴 매달 시민단체에 보내는 3만원에 2만원을 더해 5만원을 기부하는 것. 장삼이사의 조그마한 마음과 정성이 올 한해 우리 사회를 ‘사람이 살 만한 세상’으로 비춰줄 거라 믿는다.

박세환 정치부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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