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용만 (9) 공직 초기부터 ‘약속은 무조건 30분 미리’ 지켜

정일권 전 총리 이야기 듣고 실천, 청와대 내각기획통제관실 뽑혀 박정희 대통령 처음으로 만나

[역경의 열매] 이용만 (9) 공직 초기부터 ‘약속은 무조건 30분 미리’ 지켜 기사의 사진
이용만 장로(오른쪽)가 이북에서 피난 나온 평강고급중학교 동기동창이자 단짝 친구인 김해영씨와 함께 했다.
1962년 6월 서울 세종로에 있는 중앙청으로 처음 출근했다. 나의 공직 생활이 시작된 날이다.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 제가 서울에서 중앙정부 공무원으로 출근을 합니다”라고 속삭였다. 북에 있을 때 친척들이 “우리 승만(옛 이름)이는 이다음에 도지사 정도는 할 거야”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도지사는 아니고 장관이 되긴 했지만 이 말이 늘 힘이 됐다.

살면서 몇 번 감격의 순간을 느낀 적이 있었다. ‘곁에 부모님이 계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하고 생각되던 날들이다. 중앙청으로 처음 출근하는 날 이전엔 1956년 4월 혈혈단신 주경야독으로 고려대에 들어갔을 때가 그랬다. 1971년 9월 재무부 이재국장에 오를 때도 감사기도를 드렸다.



5·16 이후 박정희 장군은 신정부조직법을 발표했다. 이 법에 따라 내각 수반 밑에 내각기획통제관실을 설치하고 각 행정부처에 기획조정관을 뒀다. 이 기관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담당하는 지휘부였다. 행정 각 부처의 기획, 예산집행 및 전용, 사업별 심사 분석 업무를 맡았다. 분석 결과 문제점과 건의사항을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에게 보고하는 기구였다.

폭주하는 업무 때문에 일손이 달린 내각기획통제관은 주변에 인물을 수소문했다. 이북 출신에 자원입대 경험이 있고 대학을 졸업한 내가 추천받았다. 중앙청 출근 몇 개월 뒤인 11월에는 서기관 사무관을 선발하는 고등전형시험이 있었다. 나는 이 시험에 합격해 행정사무관 4호봉으로 임명됐다.

내각기획통제관실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야간을 이용해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남덕우 이승윤 등 쟁쟁한 교수진으로부터 경제발전론을 배우고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경제학 행정학 등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훗날 업무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966년 2월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논문 주제는 공기업 문제로 했다. 우수 졸업 논문 4편 가운데 1편으로 선정됐다.

약속은 무조건 30분 미리 지켰다. 공직 생활 초기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재무부 장관을 할 때도 이 원칙을 준수했다. 청와대에서 오전 10시 회의가 열리면 정부과천청사에서 좀 일찍 출발해 9시 30분 정도면 서울 세종로 조선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시간을 칼같이 맞추고 미리 약속 장소에 나오는 것은 정일권 전 총리와 장덕진 전 농림부 장관에게 배웠다.

장 장관이 이재국장이던 시절 정 총리에게 세배를 갔다가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정 총리의 영어 실력은 군인 출신 가운데 최고였는데 그게 그냥 된 것이 아니었다. “장 국장, 난 말이요 술을 마시고 온 날도 집에 들어오면 1시간 정도 AFKN을 듣거나 타임지를 읽고 자요. 우리가 서양 사람들한테 ‘코리안 타임’이라고 비난을 받지 않소. 그러니 무슨 약속이든 15분 전에 가는 것을 습관화하기 바라오.” 장 국장이 내게 들려준 이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66년 7월 청와대에서 내각기획통제관실로 사무관을 차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내가 뽑혀 청와대 비서실로 가게 됐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만났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의 ‘역경의 열매’ 회고록은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의 저작물(이용만 평전-모진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인생 이야기, 21세기북스, 2017)을 바탕으로 추가 취재를 통해 작성된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만 평전’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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