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마크롱 “아프리카에 약탈문화재 반환” 속셈은 중국 견제 기사의 사진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있는 ‘엘긴 마블’은 18세기 그리스가 오스만투르크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의 엘긴 백작이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낸 조각이다. 제국주의 시절 구미 열강과 식민지였던 국가들 사이에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문화재 반환 논란을 상징한다. 왼쪽 점선의 파르테논 신전은 원형대로 보존되었을 경우를 상정한 모습. 파르테논 신전은 오랜 세월 파손이 돼 오른쪽 점선을 비롯한 상부의 네 면을 장식하던 조각이 떼어지면서 현재는 골격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오른쪽 아래 작은 사진들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인 엘긴 마블의 일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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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0일 세계 박물관 및 문화재 관계자들 사이에선 환호와 당혹감이 교차했다. 프랑스 주간지 르 포왕트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의뢰로 작성된 전문가 보고서를 사전 입수해 공개한 내용 때문이다.

당초 23일 공식 발표될 예정이었던 이 보고서는 ‘프랑스에 있는 문화재가 해당 국가의 동의 없이, 특히 식민통치 기간 획득된 것이라면 영구 반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약탈된 것이라도) 문화재의 해외 증여를 금지한 문화재관리법을 개정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세네갈 나이지리아 베냉 등 그동안 반환을 요청해온 아프리카 국가를 대상으로 상징적인 유물부터라도 먼저 돌려줌으로써 진정성을 보여주라고 제안했다.

이 보고서는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에서 많은 유물을 가져온 영국이나 독일 등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2011년 프랑스에서 장기대여 형태로 한국에 온 외규장각 의궤 사례에서 보듯 이들 국가와 주요 박물관은 그동안 대여만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약탈 및 불법 문화재 반환에 선례를 남긴다면 이들 박물관에도 반환 압력이 거세질 게 명백하다. 이 때문에 식민통치를 경험했던 국가들은 프랑스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 이후 자국 문화재 반환에 희망을 품게 됐다.

이 보고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해 3월 프랑스 미술사학자 베네딕트 사부아와 세네갈 경제학자 펠윈 사르를 특별고문으로 위촉하고 문화재 반환 연구를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11월 말리 베냉 나이지리아 등 서아프리카 3개국 순방에서 “아프리카의 유산은 유럽의 박물관과 개인 소장품으로만 있을 수 없다”며 문화재 반환을 시사했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아프리카 문화재의 최소 90% 이상이 유럽 등 해외에 있으며, 과거 영국과 함께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프랑스에는 11만여점이 존재한다. 파리 국립민속문화박물관인 케브랑리에만 약탈, 불법으로 획득된 아프리카 문화유산이 4만6000여점에 이른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프랑스 정부는 보고서 발간 직후 1892년 프랑스군이 약탈한 아보메 왕궁 내 동상 등 26점을 돌려주겠다고 베냉 정부와 합의했다. 베냉 정부는 2016년부터 프랑스에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베냉 문화재 4500~6000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식민지 시절 프랑스군과 선교사들이 반출한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역대 프랑스 정권과 달리 아프리카 문화재를 반환하려는 것은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엇보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것을 막고 자국과 옛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프랑스가 실제로 문화재를 반환하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다. 먼저 의회에서 법률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또 프랑스 내에서 반대 여론도 적지 않다.

국제사회의 단골 이슈였던 약탈·불법 문화재 반환 문제는 마크롱 대통령의 반환 선언 및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그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로 각국의 희귀 유물 900만여점을 보유 중인 영국 대영박물관은 이번에도 논쟁의 중심에 섰다.

대표적인 것이 대영박물관의 인기스타 ‘엘긴 마블’이다. 엘긴 마블은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상단 외벽을 장식하던 조각들이다. 19세기 초 그리스를 지배하던 오스만투르크(터키) 주재 영국대사였던 엘긴 백작 가문의 토마스 브루스가 파르테논에서 떼어내 영국으로 가져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국 정부는 엘긴 마블을 3만5000파운드에 구매해 대영박물관에 소장하도록 했다.

그리스는 1829년 터키에서 독립한 뒤 엘긴 마블이 도난당한 것이라며 영국에 반환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영국은 오스만투르크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반출했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법 문화재 반환이라는 원칙을 마련한 유네스코 협약(1970년)이나 유니드로아 협약(1995년)의 경우 1970년 이전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소급 효과가 없다. 그리스가 아무리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해도 이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리스는 국제 여론에 호소하는 등 외교적인 방법을 찾아왔다.

토마스 브루스의 후손인 엘긴 백작 가문의 찰스 브루스 경은 지난해 12월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는 자료에서 엘긴 마블은 6대 선조인 토마스 브루스가 천연두 백신을 오스만투르크에 제공한 것에 대한 술탄의 선물이었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을 구한 공로로 술탄이 그에게 엘긴 마블 반출을 허용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영국에선 천연두 백신 답례라는 해명을 놓고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유엔은 최근 엘긴 마블과 관련해 그리스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동안 영국에선 엘긴 마블을 비롯한 식민지 시대 유물에 대해 “반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힘을 얻어 왔다. 특히 일부 개인 소장가들 사이에선 자발적으로 이런 유물을 반환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난해 8월 영국의 마크 워커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베냉의 청동 조각 두 점을 베냉 정부에 돌려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영국 독일 벨기에 등 유럽 각국은 공식적으로 소장 중인 유물에 대해 합법적으로 취득했거나 식민지 시대에 얻은 것은 반환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보고서 발표에 이어 오는 4월 아프리카 국가들과 문화재 반환 관련 회의를 열기로 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일정 부분 상황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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