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제민] 갈림길에 선 한국 기사의 사진
3·1운동 이후 100년간 일궈낸 민주화·산업화·경제성장 성과 더 나아갈지 아니면 후퇴할지 2019년에 달려 있다
특권의 불로소득 청산하고 법치 바로세워야 장기적 발전 토대 갖출 수 있어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해다. 3·1운동으로 근대적 민족 개념이 나왔고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졌다. 이를 계기로 민주주의 개념이 정착되었다. 당시 한국은 식민지였지만 끊임없는 독립운동에 힘입어 해방될 수 있었다. 광복 후 한국은 어떻게 됐나. 분단과 전쟁을 겪었지만 그 후로는 성공의 역사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백수십개 나라 중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둘 다 이룬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우선 외부 조건이 좋았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 위에 성립한 자유무역, 민주화 같은 원칙은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거기에다 20세기 후반 세계자본주의경제는 공전의 호황을 경험했다. 20세기 전반 세계는 2개의 대전, 대공황, 2개의 대혁명을 겪었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상황이 일변했던 것이다. 한국은 냉전하에서 세계자본주의경제에 편입된 뒤 수출 지향적 공업화로 그 호황에 편승할 수 있었다.

한국 자체의 역량도 물론 중요했다. 한국 정부는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데 능력을 보였다. 더 중요한 것은 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부 역할이 한계에 달하자 자유화를 했다. 민주화도 이루었다. 민주화는 그 자체로서뿐 아니라 경제발전에도 중요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한국에 민주화 이외의 출구는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화를 하면서 고도성장을 이어갔고 분배도 평등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한국이 변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를 보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다. 외환위기는 냉전이 끝나고 미국 헤게모니의 성격이 변한 데 적응하지 못해서 일어났다. 위기 후 긍정적 개혁도 이뤄졌지만, 성장률이 떨어지고 분배가 악화됐다. 2008년 이후에는 세계자본주의의 위기가 겹쳤다. 그전 60년 가까이 이어오던 세계자본주의경제의 호황은 대침체로 반전되었다. 대침체는 아직 완전히 수습되지 못한 상태다.

대침체가 잘 수습되지 않은 것은 강대국 간의 갈등이 한 원인이다. 2008년 위기가 1929년 위기처럼 대공황으로 가지 않고 대침체로 간 것은 국제공조를 통해 보호무역을 자제하고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등장 이후 국제공조뿐 아니라 2차대전 이래의 세계자본주의 기본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중국의 부상도 문제다. 중국은 미국 헤게모니하의 세계자본주의 질서를 받아들이면서 고도성장했지만, 이제 그 질서 자체를 바꾸고 싶어 한다. 그것은 미국의 견제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는 외환위기와 대침체로 타격을 받았지만 성과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성장률은 선진국 중 높은 편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 달러를 넘었다. 민주화에서도 지표로 보아 아시아 국가 중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어두운 면도 많다. 일자리 문제가 나아지지 않고 있고 출산율 하락과 혁신능력 부진으로 성장잠재력이 약화되었다. 분배는 별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정치가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2019년은 중요한 해다. 지난 100년간 이룬 성과에서 더 나아갈지 오히려 후퇴하게 될지가 올 한 해에 결정 날 가능성이 커졌다. 분단 이후 숙제였던 평화 정착이 갈림길에 섰다. 지난해 정부는 혼란스러워져 가는 강대국들 간의 관계를 뚫고 여기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국의 노력만으로 안 된다는 제약이 있다. 정부는 그런 제약이 없는 내정 쪽으로 무게를 옮겨야 할 것이다.

국내 개혁도 갈림길에 섰다. 개혁의 기본 구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강자의 이익을 제어한다는 원칙은 지켰다. 세습귀족화한 재벌이나 신성가족 법조인들을 법 아래로 내려오게 하려는 노력이 그런 것이다. 세습이나 특권에 기대어 불로소득을 얻는 구도를 청산하고 법치를 확립하는 것은 장기적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바탕이다.

문제는 단기적 현실이다. 그런 개혁은 이런저런 이유로 제도화되지 못한 반면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단축 같이 경제에 충격을 주는 정책이 먼저 시행되었다. 노동조합의 힘은 강해지는데 사회협약 도출은 부진하다. 사회협약으로 협조적 노사관계를 이룰 수 있다면 노동조합이 강화되는 것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모두 도움이 되지만, 노사관계가 적대적이면서 노동조합만 강해지면 경제의 성과가 나빠지고 결국 민주주의도 위협받게 된다. 이런 식의 갈림길이 곳곳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100년간 많은 것을 이루었다. 3·1운동에 참여하고 상해임시정부를 만들었던 선조들이 열망하던 선진적인 민족국가를 만든 것이다. 그런 성공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 올해는 중요한 해다. 정부가 국내 개혁으로 중심을 옮겨서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이제민(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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