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용만 (10) 청와대 근무하며 경제개발계획 한눈에 익혀

정무비서관 보좌… 박정희 대통령 온통 경제개발만 생각, 말석 사람 챙기고 야근자에 밤참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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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오른쪽)이 1970년 청와대에서 열린 수출확대회의를 마치고 재무부 이재1과장이던 이용만 장로를 격려하고 있다.
1966년 7월부터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 조직은 비서실장 밑에 정무비서관이 있고 그 밑에 비서관(지금의 수석비서관)들이 소속된 체계였다. 오늘날엔 정무비서관이 국회와 정당 관계만 조율하지만, 그땐 모든 비서관을 통제하는 국정 총괄 기능을 맡았다.

재무부 차관을 지내고 막 청와대에 발탁된 서봉균 정무비서관을 보좌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나는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통령 주재 회의의 안건, 참석자 선정과 연락, 회의 후 속기록 작성 등을 맡았다. 가장 중요한 일은 회의 결과를 대통령 지시 각서 형태로 정리해 정무비서관과 비서실장을 거쳐 대통령의 결재를 받은 다음 각 부서에 전달하는 업무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하는 모습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다.



박 대통령은 ‘기획 및 계획, 집행, 평가와 분석’ 이라는 공식에 입각해 일했다. 체계적·과학적·능률적 프로젝트 수행을 강조했다. 나는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에 있는 상황실에서 높이 5m, 길이 8m 되는 직사각형 상황판을 통해 부처별 주요 프로젝트의 완공 계획, 진행 실적, 문제점을 일목요연하게 표시하고 관리하는 일을 했다. 수출입 동향, 세수 현황, 산업시설 건설 현황 등을 담은 통계와 도표뿐 아니라 완공된 공장, 건설 중인 공정, 건설 계획 중인 공장을 표시하는 굴뚝 그림으로 지도 곳곳이 가득 찼다.

나는 대통령이 상황실에 들어올 기미가 있으면 언제든 답할 준비를 하면서 대기했다. 덕분에 리더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봤고 경제개발계획을 한눈에 익힐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은 상황실에 들어와 빨간 줄이 길게 늘어나지 않은 프로젝트에 대해 “왜 이렇게 더디게 진행되고 있나”라고 물었다. 그러면 나는 주저 없이 “네, 이 프로젝트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체되고 있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어야 했다. 이때 박 대통령은 그 이유를 메모로 남겼다. 장관을 채근하고 독촉하기 위해서였다. 놔두면 알아서 할 리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점검하고 독려하는 게 몸에 뱄다.

박 대통령은 1년 열두 달 스물네 시간을 경제개발과 수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기 일에 전부를 걸고 사는 분이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큼직한 상황판에 적힌 작은 숫자가 눈에 들어올 리 없는데, 대통령의 머리엔 깨알 같은 숫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항상 숫자 중심으로 질문을 던졌다. 대충 답하고 슬쩍 넘어갈 수가 없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엔 이후락 비서실장이 상황실에 들어와 점검하는데 박 대통령의 키가 작으니까 자리에 두꺼운 방석을 갖다 놓고 나갔다. 그러면 박 대통령은 들어와서 착석하기 전에 방석을 치워버리곤 했다.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앉으면 되지, 이런 게 왜 필요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인상 깊었던 점은 박 대통령의 인간적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보고만 받은 뒤 휑하고 나가지 않았다. 말석에 앉은 사람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하며 “수고가 많네”라고 격려했다. 각 부처 직원들이 상황실 정리를 위해 야간작업을 하는 것을 보면 경호실에 지시해 국수와 커피 등 밤참을 보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람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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