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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는 휴강에 “교수님, 택시비 보상하세요”

권리 포기 않는 요즘 대학생들… 대학원은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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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사립대학에서 근무하는 교수 A씨는 지난 학기 학생이 보낸 메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메일에는 수업 교재를 구입한 영수증과 계좌번호가 적혀있었다. 이 학생은 “수업계획서에 따라서 교재를 구입했는데 실제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재는 ‘개정판’이라 다시 책을 구입해야 한다”며 “책값을 입금해 달라”고 요구했다. 교수가 처음부터 잘못된 정보를 공지했으니 물어달라는 것이다. 결국 A씨는 적혀있던 계좌로 학생에게 돈을 입금했다.

다른 사립대 교수인 B씨도 A씨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B씨는 갑작스럽게 휴강을 한 뒤 학생에게 택시비를 돌려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지각할까봐 택시를 타고 수업시간에 맞춰 출석했는데 휴강을 해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이었다. B씨는 “사전에 말하지 못한 점은 미안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대학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대학 구성원인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인식이 변하면서 학생과 교수의 관계도 변화 중이다. 권위주의에 기초한 관계나 전통적인 사제 관계가 허물어지고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보통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자기결정권, 자유, 행복에 대해 민감하고 ‘나는 나’라는 주체적 성격이 강하다. 지난해 5월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1980~1994년생을 밀레니얼 세대로, 1995~2005년생을 Z세대로 구분한 ‘1934세대의 라이프스타일 및 가치관 조사’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34세 응답자 900명 중 44.8%가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알리고 표현하는 편이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단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사생활 존중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는 질문에도 62%가 동의했다.

이를 반영하듯 현직 교수들은 과거와 비교해 대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교수 C씨는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며 연구실에 찾아와 3시간 넘게 성적 산출 자료를 한 장 한 장 분석하고 돌아간 학생이 있었다”며 “당연한 학생의 권리지만 적극적인 태도에 놀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교수 D씨는 “본인들의 학습권이 다소간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이라며 “이제는 교수들도 학생에 대한 기대를 바꾸고 적응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A씨와 B씨가 겪은 극단적인 사례는 학생들이 자신을 대학의 소비 주체로 보는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비싼 등록금을 낸 만큼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 등록금이 이슈가 되면서 학생회는 물론 학생 개개인도 대학의 소비자라는 입장을 갖게 됐다”며 “대학이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의 시장이고, 교수는 서비스 제공자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생들의 변화가 당연하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평가했다. ‘요즘 애들이 건방지다’거나 ‘예의가 없다’는 측면으로만 받아들이면 교육자로서 교수 사회가 도태될 거라는 의견도 나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더 이상 위계라는 말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 학생과 교수 관계가 평등한 공급자와 수혜자의 입장이 돼야 한다”며 “서로의 신뢰를 깨뜨릴 만한 과도한 주장은 문제가 있지만, 대부분은 합리적인 교육시스템을 만들고 교수들이 기본적인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소위 ‘갑질’이라는 사회 문제 의식을 공유하면서 학생과 교수의 관계도 변하고 있다.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기업이나 조직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문제를 적극 받아들이고 진정성 있게 소통하면 학생들 역시 공감한다”고 했다.

다만 한국 사회의 담론이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치우쳐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개인의 책임과 의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간과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2030세대는 사회가 인정한 지위나 책임, 거기에 수반되는 권위조차도 의심하려고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주장과 자율적 판단, 권리를 과도하게 존중하는 ‘문화적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개인의 책임, 의무에 대한 담론도 동시에 작동돼야 질적으로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준 교수도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지위와 역할, 거기에 따른 적절한 행동을 배울 기회가 적었던 것 같다”며 “권리라는 건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에게 인정받아야 형성된다. 상호존중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당사자인 대학생들 사이에선 교수와 학생의 위계질서가 여전히 공고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지도교수가 실권을 쥐고 있는 대학원은 여전히 ‘갑질’ 사각지대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 의원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지난해 9월 공동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원 석·박사과정생 및 박사 후 과정생 등 연구원의 74%(146명)가 ‘교수의 갑질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가장 시급하게 개선할 사항도 ‘교수의 우월적 지위와 인권문제’(39%)가 1위로 꼽혔다. 소속 학교의 학생들이 직접 교수에 대한 평가를 남기고 연구실 정보를 공유하는 교수평가사이트 ‘김박사넷’은 지난해 1월 등장해 학생들의 ‘고발의 장’이 되기도 했다.

윤인진 교수는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시대에 맞춰 새로운 윤리, 새로운 인간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교수는 “과거의 룰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며 “사회·경제적 변화로 개인주의 합리주의 민주주의 등에 기초해 인간관계가 세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의 인권과 권리를 존중하고, 서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기본 틀 위에 한국인의 전통적인 정서인 정, 의리, 신뢰가 자발적으로 더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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