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병호] 문 대통령이 아베를 달랠 때 기사의 사진
“중·일이라고요? 일·중이 아니고요? 정말 그렇게 불러요?”

박근혜정부 때 당시 외교부 차관보랑 식사를 하다 중국과 일본을 중·일이라고 지칭했더니 차관보가 깜짝 놀라며 하던 말이다. 그는 다른 기자 2명도 요즘 언론은 대부분 중·일이라고 한다고 하니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북·중·러 공조 관계를 견제하는 한·미·일 우방 관계를 감안하면 일·중이라고 하는 게 맞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자리를 파하고 기자들끼리 가다가 “차관보가 은근 친일파 같다”고 뒷담화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에 주일대사를 도쿄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가 “왜 한국에선 천황을 천황이라고 안 부르고 일왕이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는 얘길 듣고 마찬가지로 ‘일본 오더니 친일파 다 됐네’라고 속으로 욕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부터 그 차관보나 대사에 비하면 훨씬 더 친일적으로 비칠 만한 주장을 하려고 한다.

요즘 일본과 사이가 너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책임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결정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로 양국이 틀어진 뒤 해군 광개토대왕함의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준 논란까지 벌어지자 마치 적대국처럼 으르렁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레이더 사건을 부풀리고 있다지만, 그 배경에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일본군 위안부 합의 철회 문제로 앙금이 남아 있던 게 우선적인 이유일 것이다.

한·일이 위안부 합의 문제와 관계개선 문제를 분리 대응하는 기조를 유지했던 건 잘한 일이었다. 그렇게 갈등을 ‘봉합’한 상태로 두다 지난해 말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조치와 대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오니 아베가 발끈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사법부 결정이라서 정부도 어쩔 수 없다지만, 역지사지의 입장이 돼 보면 일본으로선 “다 한국이 한 일”인 셈이다. 게다가 야당과 보수 언론은 문재인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했다고 규정하지 않던가.

이런 점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이 아베를 적극적으로 달래야 한다. 지난해 5월 아베와의 정상회담 때 복원키로 한 셔틀외교가 필요한 때가 딱 지금이다. 오가지 않더라도 전화도 걸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처럼 친서나 특사를 보내고 신년 인사라도 나눠야 한다. 지금은 아베보다 문 대통령이 그런 제스처를 취하는 게 순리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얼마 전 외교부 당국자들에게 대법원 판결 등과 관련해 일본에 ‘세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옳은 판단인지 모르겠다.

올해 동북아를 둘러싼 외교지형을 살펴보면 더더욱 일본과의 관계를 좋게 풀어가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6월 주석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국빈방문한다. 이어 아베는 하반기에 중국을 국빈방문한다. 양국은 올 봄에는 ‘고위급 경제대화’를 갖기로 했고, 양국민의 대대적인 인적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사드 보복 문제가 명쾌히 걷히지 않아 중국과 어정쩡한 관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일이 바짝 밀착하면 우리가 외교적으로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 또 지금껏 우리 관광업계를 먹여 살리던 일본 관광객들 역시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 게다가 만약 북한 비핵화가 지지부진해 우리가 향후 미국과도 냉랭해지면 고립을 넘어 외교적 왕따를 당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은 일본과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이고, 문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검은 돼지든, 흰 돼지든 무게만 많이 나가면 된다”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신년사를 새겨 실용외교를 펼쳐야 한다. 음치인 트럼프는 지난해 9월 미국을 방문한 아베를 위해 직접 생일축하 노래까지 불러줬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지도자는 뭐든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침 방탄소년단(BTS) 때문에 일본에서 한류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이럴 때 문 대통령이 촉매를 더해줘야 한다.

손병호 정치부장 bhs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