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현길] 절망과 희망의 14초 기사의 사진
2018년을 이틀 남겨둔 지난달 30일 야후 재팬에는 ‘벨기에전 14초, 그 절망은 4년 후 희망으로, 5명의 남자들이 말하는 그 역습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018 러시아월드컵 16강 일본-벨기에전을 경험한 선수와 코치진 5명의 회상이 기사의 주 내용이다.

러시아월드컵 16강에서 우승 후보 벨기에를 만난 일본은 사상 첫 8강 진출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일본은 후반 2골을 먼저 뽑아 2-0으로 앞서다 2골을 연속 허용한 후 추가 시간에 벨기에 나세르 샤들리에게 역전 결승골을 내주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그 마지막 역전골을 만든 벨기에의 역습은 단 세 번의 패스로 이뤄졌고, 골이 들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14초에 불과했다.

통한의 14초를 회상한 5명의 구성은 이렇다. 벨기에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에게 가로막히는 코너킥을 날려 역습의 빌미를 제공한 혼다 게이스케, 역전골의 주인공 샤들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쫓아가 발을 뻗었던 수비수 쇼지 겐, 세 골을 허용한 일본의 수문장 가와시마 에이지, 데구라모리 마코토 전 대표팀 코치, 니시노 아키라 전 대표팀 감독이 각자의 14초를 기억해냈다.

먼저 역습으로 연결된 코너킥을 찬 혼다는 조별리그 첫 상대 콜롬비아전을 머릿속에 그렸다고 했다. 당시 혼다는 1-1 동점 상황에서 코너킥을 날려 오사코 유야의 헤딩 결승골을 합작했다. 코너킥 공격에 가담했던 쇼지는 쿠르투아 골키퍼로부터 공을 받은 케빈 더 브라위너의 위치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80m를 쫓아갔지만 늦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근육이 찢어져도, 뼈가 부러져도 괜찮으니 마지막 순간 공에 닿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떠올렸다. 가와시마 골키퍼는 “이후에 ‘저 장면의 해결책이 이러니 다음엔 이렇게 해야지’라고 간단히 말할 수 없는 게 축구”라며 역습 순간의 무력감을 나타냈다.

연장전 승부에 자신 있었다는 니시노 전 감독은 자신들의 세트플레이 이후 상대 골키퍼에서 시작되는 공격에 대해서까지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데구라모리 전 코치도 혼다의 코너킥 시도와 코너킥 당시 선수들의 위치, 선수 교체를 주저한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도하의 비극’에 필적하는, 일본 축구계가 공유해야 할 교훈과 재산을 얻었다”고 말해 이날의 패배와 마지막 골 상황이 간단치 않은 숙제를 남겼음을 시사했다. 도하의 비극은 1993년 10월 이라크와의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골을 허용해 일본의 첫 월드컵 진출이 좌절된 것을 뜻한다.

실패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지만 실패를 직시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다. 당사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보다 하루빨리 털어버리거나 실패의 책임을 묻는 데 더 익숙한 게 현실이다. 준비한 만큼 결과를 내고, 평가받는 것이 대회인 만큼 결과를 두고 책임을 묻는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일본 역시 16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10명이 싸운 콜롬비아전 승리 외에 승리가 없었던 점, 벨기에전 역전패의 책임을 물어 감독 교체 수순을 밟았다.

다만 그간 한국 축구에서 실패의 순간을 복기하고 곱씹는 일이 감독 교체만큼의 무게감을 갖고 이뤄졌는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제대로 된 복기가 있은 후에야 문제의 원인이 감독이나 선수의 잘못된 판단 때문인지, 둘 모두 때문인지, 생각지 못한 다른 원인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한축구협회는 2014 브라질월드컵 실패 이후 320쪽이 넘는 백서를 처음으로 펴냈다. 하지만 4년 뒤 세계 최강 독일에 승리하고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는 데는 실패했다. 4년이라는 시간으로 고쳐질 수 없는 문제가 있었거나, 무엇이 실패인지 정확하게 몰랐거나, 알고도 행하지 않았던 게 이유일 수 있겠다.

한국은 지금 59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고 있다. 59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중압감에 선수와 코치진의 부담도 클 것 같다. 결과가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납득할 만한 과정을 보여준다면 팬들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김현길 스포츠레저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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