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천지우] 지질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 기사의 사진
국내에서도 10대의 총기난사 인질극이 있었다. 학생도 군인도 아닌, 강원도 산골에서 화전을 일구던 16세 소년 2명이 서울시내 다방에서 벌인 일이다. 1971년 8월 동네 친구인 김군과 박군은 마을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 2정과 실탄 수백 발을 훔친 뒤 상경, 영등포의 한 다방에서 10여명을 인질로 잡고 3시간 넘게 난동을 부렸다. 출동한 경찰 1명과 행인 1명을 쏴 죽였다. 길거리에도 총을 난사해 시민 4명이 다쳤다.

두 소년은 다방으로 전화를 걸어온 기자들이 자수를 권하자 “살기 싫으니 집어치우라”며 짜증을 냈다. 둘은 새벽시간에 잠시 졸았고 그 틈을 노린 인질들에게 붙잡혔다. 집안이 가난해 중학교 진학을 못한 이들은 공부도 안 시켜주는 부모가 날마다 밭일 열심히 안 한다고 혼내서 세상에 대한 반항심이 생겼다고 진술했다. 결국 둘은 “우리 속상한데 서울에 가 총이나 실컷 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무서운 10대’가 보여준 반사회적 행동의 한 극한이라 할 수 있다. 허술하고 가난했던 시대에 얇은 보호막조차 없던 소년들이 울화를 터뜨린, 현재의 시각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이제는 보호막이 많이 튼튼해져 이런 일이 재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그래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은 보호가 과해진 측면도 있다. 사고가 났다 하면 뭐든 금지부터 하고 본다. 지난달 강릉으로 체험학습을 떠난 고교생들이 펜션에서 가스누출 사고를 당하자 교육부는 각 교육청에 안전이 우려되는 교외체험학습을 재고할 것을 요청했다. 학교 밖은 위험하니 안에서 품고만 있으라는 지시다. 사고는 가스누출로 난 것이고 체험학습 때문이 아니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런 대책을 내놨다고는 보지 않는다. 교육부나 일선 학교가 아무 조치도 안 했다면 “왜 가만히 있느냐”고 욕을 먹었을 것으로 본다.

내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환경 관련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부 부모들의 대응을 보고 놀랐었다. 털끝만큼의 위험 요소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와 이를 관철시키는 추진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 같은 부모들의 강력한 참견은 학교에서 그치지 않고 군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부모들 안심시키려고 홈페이지에 아이들 사진을 올리는 것처럼, 병사들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는 부대가 있다고 한다. 위험할 수도 있는 작전에 병사들을 투입시키기 전 부모에게 동의서를 보낸 부대도 있다. 전쟁이 발발해도 일일이 부모의 참전 동의를 받아야 할 판이다. 많은 부모가 부대에 민원을 넣는 등 성화를 부리니 군대가 이렇게 변한 것일 테다.

글로벌 스타 강연자로 떠오른 조던 피터슨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질한 남자가 되지 말라”는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금언을 인용하며 절대로 의존적인 남자가 되지 말라고 강조한다. 피터슨의 베스트셀러 ‘12가지 인생의 법칙’에는 자식 교육에 관한 법칙이 2가지로,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마라’와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둬라’다. 피터슨은 인정 많고 상냥했던 어머니가 자신에게 “집이 너무 편하면 안 돼. 네가 독립할 생각조차 안 할 테니까”라고 말하며 남들 눈에 가혹하게 보이더라도 자녀의 독립심을 키워주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피터슨은 과잉보호가 아이의 정신을 망가뜨린다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남성은 강해져야 하며, 소년이 남성이 되려고 애쓸 때 방해하는(공격적·독립적 성향을 없애는) 시대 풍조는 잘못된 것이다. 그는 강한 남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약한(지질한) 남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요즘 여론조사를 보면 20대 남성들의 사회를 향한 분노가 크다. 이들을 제대로 보듬지 못하는 사회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과보호 속에서 자란 탓에 좀처럼 만족을 모르고, 강한 남자로 자라지 못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은 현실에 짜증만 내는 20대도 꽤 있을 것이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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