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진창수] 한·일 갈등, 전략적 관리를 기사의 사진
연초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한 말은 충격적이다. 하루빨리 북한 비핵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는 것에 최우선순위를 두면서 우방국에는 책임 분담을 요구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를 확립하려고 한다. 미·중 대립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동북아를 활성화해 외교적 선택지를 확대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 외교의 우선과제를 고려하면 한·일 간 갈등 관리는 필수적이다. 최근 화해·치유재단 해산,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일본 초계기에 레이더를 조사했다는 일본의 주장 등으로 한·일 관계 갈등은 그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꼬이고 있다. 전문가들조차 한·일 관계는 장기간 대립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현재 상황에서 한·일 갈등의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선 외교에서 정부의 능력이 현저하게 약화됐다. 그 배경은 정부가 전략적 판단에 근거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정부는 한·일 관계에서 투트랙 정책을 주창하고 있지만 그 정책이 실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정부야말로 남북 관계를 생각해 한·일 관계를 관리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있지만, 현실은 여론과 전략 사이에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역대 한국 정부의 대일 정책을 보더라도 국민들의 감정을 극복하면서까지 한·일 관계 관리를 성공하지는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었다. 여론과 시민단체를 무시한 정책도 문제지만 시민단체와 국민 여론만 엿보는 정책 또한 중장기 전략외교를 해치는 것임은 자명하다. 한국 정부만 탓할 일도 아니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은 지지율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일본 국민의 여론 동향에 더욱더 민감해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이 한·일 합의를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적 여론이 비등한 현재 상황에서는 아베 정권이 나서서 한·일 관계에서 물꼬를 트고자 하는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다.

또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진 플레이어(행위자)가 사라졌다. ‘한·일 관계에 대한 관심은 중국만 가지고 있다’는 말이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다. 한국에서 한·일 관계를 해결하고자 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아 어려운 지경에 봉착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외교부 내 일본 관련 임무는 꺼리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과거에는 한·일이 대립하면 한·일 파이프를 자처하는 정치가나 경제인들이 현해탄을 건너 가교 역할을 했다. 최근 정치가들은 상대방 비판에서는 적극적이지만 한·일 관계 개선에는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일본 상황은 더욱더 냉담하다. 친한파들이 한국 문제에는 더 이상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혐한 분위기를 부추기기조차 한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뀔지 모른다는 불신이 정착되어 한·일 관계 진전에는 ‘강 건너 불구경’ 분위기다.

지금이라도 한·일 협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전략적 필요성 때문이다. 한·일 협력이야말로 중국, 미국과의 관계에서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난 뒤에 희망이 남아있듯 한·일 간에는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단지 한·일 양국은 국내 정치와 감정이 앞서서 중요한 국익을 보지 못할 따름이다. 한·일 관계를 관리한다는 것은 한국 외교의 선택지를 높이는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전략적 동반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최근 양국 간에 불거진 레이더 갈등을 하루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 안보 문제에서 한·일 양국이 진실게임 하듯 외교전을 펼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강제징용 문제에서도 양국이 지혜를 맞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일 양국은 감정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동북아, 나아가 국제 문제를 생각하는 외교로 돌아와야 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