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민세진] 금융그룹 감독, 하려면 제대로 기사의 사진
1998년 4월 미국 금융회사 씨티콥과 트레블러스그룹이 합병을 발표했다. 기업 합병 역사상 가장 큰 거래였고, 결과로 탄생하는 씨티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회사가 될 것이었다. 문제는 씨티-트레블러스 합병이 현행법을 위반한다는 사실이었다. 65년 전 대공황 때 개정된 은행법에 따르면 씨티 같은 은행은 트레블러스가 보유한 보험회사나 증권회사와 한 그룹 안에 있어서는 안 됐다. 이런 불법적인 상황이 생기면 5년 안에 문제가 되는 사업을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 법 규정이었다. 대놓고 법을 어긴 이 합병은 그러나 1999년 미국 의회가 은행법을 개정해 허용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었다. 미국 의회는 왜 일개 기업에 말도 안 되는 특혜를 준 것일까.

사실 미국 입장에서 씨티그룹 탄생은 일개 기업의 문제가 아니었다. 은행, 보험, 증권 등 다양한 금융업을 영위하는 회사들이 한 그룹 안에서 시너지를 추구하는 ‘복합금융그룹’은 이미 유럽에서는 정착된 사업 모형이었다. 특히 유럽의 금융회사들이 1980년대 후반부터 극심한 경쟁으로 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을 복합금융그룹 형성으로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면서 미국 금융회사들의 불안과 불만은 커지고 있었다. 미국의 법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1999년 은행법 개정은 자국 기업들의 이익 증진을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다. 이후 미국의 금융그룹들은 유럽의 경쟁자들과 제대로 각축을 벌일 수 있었다. 20년이 다 된 남의 나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국 기업을 위해 현실적인 타협을 할 수 있는 정치가 절실하다는 생각에서다.

국회 계류 중인 법률안에 ‘금융그룹 감독에 관한 법률안’이 있다. 다양한 금융업을 영위하는 회사들이 한 그룹 안에 있는 복합금융그룹을 포괄적으로 감독하겠다는 것이 법률안의 취지다. 유럽연합은 이미 2002년부터 복합금융그룹 감독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한참 늦은 감이 있다. 문제는 이 법률안이 금융그룹의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기보다 재벌 규제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우선 금융회사를 갖고 있는 대기업집단이 가능한 한 모두 규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해놓았다. 세부 내용에는 대기업집단 금융회사가 보유한 계열회사 지분을 몇 년 내 아예 매각하게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선례가 없는 규제들이다. 애초에 정부가 법률안을 추진할 때 선진국들 다 하는 거 우리도 해야 한다고 출발했는데, 우리나라 법률안은 선례에서 너무 멀리 떠나 왔다. 이대로 법이 만들어진다면 세계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엉뚱한 데 힘을 쏟아야 할 판이다.

더구나 금융그룹 감독에 관한 법률안은 기존에 있는 법 개정안이 아니라 새로운 법률 제정안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이미 어떤 대기업집단은 금융 사업을 접겠다는 발표까지 한 비중 있는 제정 법률안이 소관 기관인 금융위원회 입법이 아닌 의원 입법으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금융위원회 같은 정부기관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까지 협의, 심사, 회의 등 여러 단계를 거쳐 대통령 재가까지 받아야 하는 것과 달리 의원 입법안은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서명만 받으면 바로 국회에 제출된다. 법을 만들고자 하는 쪽에서는 의원 입법이 지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니 좋겠지만, 반대로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충분한 논의가 생략되는 상황이다. 의원 입법이 대세라지만 복잡하고 전문적인 내용의 금융 분야 제정 법률이 사실상 안을 만든 정부기관의 책임이 간판으로 걸리지 않은 채 논의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씨티그룹은 2008년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게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선진국들의 복합금융그룹들은 너나없이 고통을 겪었다. 복합금융그룹을 포함해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 수위도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 전 10년여의 호시절이 있었다. 우리 기업들에 호시절을 찾아줄 정부의 국면 전환이 절실하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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