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장은수] 에고의 덫 기사의 사진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그것이 착하다는 것은 거짓이다.” 순자의 말이다. 날이 갈수록 이를 뼈저리게 실감한다. 언론은 안전보다 사고를, 평화보다 전쟁을, 평온보다 소란을 좋아하는 편향이 있지만, 잠시라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는 뉴스 보기 힘들다.

생존을 위해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은 아이들이 억류된 검문소에서 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독일의 인종주의자는 새해맞이 폭죽놀이를 즐기던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이민자들을 차량으로 공격한다. 끔찍하고 슬픈 일이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비정규직 청년은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안전사고로 처참히 목숨을 잃는다. 나랏돈으로 외국 유람을 간 군의원은 일정이 빡빡하다는 이유로 죄 없는 가이드를 때린다. 멀쩡한 벤처기업을 운영하던 이가 ‘사장질’을 한답시고 직원을 폭행하고 협박한다. 제 마음을 이기지 못한 환자가 자신을 치료하던 의사를 흉기로 살해한다. 억울하고 비참한 일이다.

인종과 재산과 신분 등에 따른 분단의 선들이 곳곳에서 살아 있는 지옥을 연출한다. 가차 없이 제 욕망을 우선하는 망종들이 사회계약을 훼손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은 어디로 갔는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증발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법률이 붕괴한 세상은 청년들을 가혹한 개인주의로 몰아간다.

서점에 나가 베스트셀러 제목을 훑어보라.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개인주의자 선언’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오늘은 내 마음이 먼저입니다’ ‘나를 조금 바꾼다’ 등. ‘나’라는 말들이 서가를 뒤덮고 있다. 출판에서는 이를 ‘나 우선주의’ ‘나 퍼스트’라고 부른다. ‘우리’를 지탱하는 공동체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면서 개인이 ‘에고의 덫’으로 내몰리는 현상이다. ‘죽고 싶은 세상’인데 ‘닮고 싶은 어른’조차 찾지 못한 청년들의 심리적 편향, 즉 인생에 대한 냉소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를 오직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청년들이 ‘나 우선주의’를 택한 것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공적 영역에 최소한으로 참여하면서 사적 영역에서나마 인간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결의인 까닭이다. 인간답게 남기 위해 인간됨의 기초인 사회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역설이 오늘날 우리가 딛고 선 현실이다. 생존을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해도 좋다는 영혼의 광증이 온 나라를 떠돌고, 목청껏 부르짖던 광장의 민주화가 일터 앞에서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정신의 위선이 공공연한 땅에서 누군들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루크레티우스의 말처럼, 더 오래 살아도 새롭게 얻을 즐거움은 하나도 없는 삶이 아닌가.

기성세대와 힘을 합쳐봐야 또다시 ‘언젠가는 좋은 날’이라는 기만만 주어지는 누적된 배신의 경험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역설적 유머를 청년의 언어로 만든다. 현재를 투자해 미래에 내기를 거는 터무니없는 모험주의 대신에 ‘나를 조금 바꾸어’ 순간의 기쁨을 제조하는 ‘사소한 행복주의’를 인생의 깃발로 치켜들게 한다. 지옥 같은 현실에 일방적이고 수동적으로 끌려가기보다 소소한 영역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의 세계가 열린다.

그러나 ‘나 우선주의’의 진짜 욕망은 더 이상 ‘한국이 싫어서’ 떠나지 않도록 세상을 더 숨 쉴 만한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절규인 듯도 하다. 인생 감각의 전면적 전향을 촉구하는 새로운 정치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관행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눈감아 온 기성의 범죄적 행각에 대한 가열 찬 폭로가 연일 벌어진다. 불투명하고 비합리적 절차를 조정하려는 윤리적 전쟁이 모든 영역에서 시도된다. 불쾌함을 불러일으키는 낡은 언어들을 재조직하고 싶다는 분투도 끊이지 않는다. 얼마 전, 한 작가가 세월호 여학생을 추모하는 소설에서 ‘내 젖가슴처럼 단단하고 탱탱한 과육에 앞니를 박아 넣으면 입속으로 흘러들던 새콤하고 달콤한 즙액’을 썼다가 ‘남성주의 시점’에서 나온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어떤 표현을 쓰느냐는 건 작가의 자유이지만, 정서 변화를 몰랐던 둔감함이 가려질 순 없다. 이처럼 꾸준히 싸움을 누적하면서 청년들은 지금 기성세대의 윤리적 응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헬조선의 책임자로서 기성세대 전체는 여기에 답할 의무가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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