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혁상] 닉슨과 트럼프의 아이러니 기사의 사진
A는 8년간의 와신상담 끝에 최고의 권력을 쟁취한다. 임기 중 대외적으로는 큰 족적을 남겼지만 두 번째 임기에 희대의 스캔들로 윤리적 치명상을 입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비난한다. 자신을 옥죄는 수사 사령탑도 해임한다. 결국 그는 거짓말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한다.

성공한 기업인 출신의 B는 최고 권력자에 오른 직후부터 여러 스캔들에 휩싸인다. 그 역시 자신을 겨냥한 수사 담당자를 해임하고 의혹을 ‘사기(hoax)’ ‘마녀사냥(witch hunt)’으로 치부한다.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적대시하고 야당 공세엔 막말로 대응한다. 수사의 칼날은 턱밑까지 다가갔지만 그는 여전히 모든 의혹을 부인한다. 의혹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수년간 삶의 궤적이 여러모로 닮은 두 사람이 있다. 짐작하겠지만 A는 37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고, B는 현직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들이 깨진 사기그릇 조각에 기피인물을 적어 추방시킨 ‘도편(陶片) 추방제’는 훗날 ‘탄핵’으로 발전됐다. 닉슨은 현대정치(우리나라를 제외하고)에서 탄핵을 떠올릴 때 가장 많이 연상되는 인물이다. 물론 그는 실제론 탄핵을 당하지 않았다. 그 전에 사임을 했을 뿐이다.

닉슨은 미국 전역에 베트남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팽배하던 1968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8년 전 젊은 존 F 케네디에게 완패한 뒤 절치부심하던 끝에 대선의 꿈을 이뤘다. 4년 뒤엔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남은 4년간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해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입주한 한 건물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이 건물의 이름은 워터게이트였다.

닉슨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한 미 역사상 첫 대통령이 된 결정적 원인은 거짓말 때문이었다. 그와 참모들은 워싱턴포스트 등 주류 언론이 이 사건을 보도할 때마다 ‘가짜뉴스’라고 비난했다. 세무조사 등 직간접적인 압력도 가했다.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 해임 지시를 받은 법무장관, 부장관이 차례로 사임하고 결국 차관이 콕스 특검을 해임한 ‘토요일 밤의 대학살’은 이 사건의 하이라이트다. 그는 결국 사법방해 등 이유로 의회에서 탄핵안 가결이 기정사실화되자 면책 조건부 사임을 하게 된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이 탄핵 위기까지 간 것도 거짓말이 원인이었다.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 자체보다 연방대배심에서의 위증, 사법방해가 문제였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취임 첫해인 2017년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의욕을 보이던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해임한 것이나 지난해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수사에 미온적이던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을 해임한 것도 닉슨의 행태를 연상케 한다.

새해 들어 미국 정가의 관심은 트럼프의 탄핵 가능성에 쏠린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에선 탄핵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현재 상원 분포로 볼 때 탄핵은 쉽지 않겠지만 특검 수사 결과 트럼프의 거짓말이 사법방해로 인정될 경우 그는 닉슨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닉슨과 트럼프는 역사에서 나쁜 리더로만 기록될까. 역사상 가장 실패한 대통령 닉슨은 대외적으론 큰 발자취를 남겼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중국을 방문, 마오쩌둥과 전격 회담을 하면서 ‘죽의 장막’에 가려졌던 중국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 냈다. 이 효과는 옛 소련의 태도 변화로 이어졌고 궁극적으론 냉전 종식으로 귀결됐다.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국내에선 분열을 부추기는 나쁜 대통령으로 여겨지지만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북한 비핵화) 풀기에 도전하고 있다. 상당한 성과도 거뒀다. 만일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2차 담판에서 또 다른 결과물을 도출하고, 비핵화 완성으로 이끈다면 그는 훗날 위대한 리더로 기억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역사는 반복되면서도 이처럼 아이러니를 동반한다.

남혁상 국제부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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