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유튜브 정치, 이대로 좋은가 기사의 사진
사실과 진실에 근거하지 않은 의도적 편가르기는 증오를 부추기고 민주주의를 황폐화시켜
옥석을 가려 가짜뉴스 발 붙일 수 없는 토양 만들 책임 시민에게 있어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유튜브에 ‘○○○ TV’를 개설하는 게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유튜브 TV 하나쯤 갖고 있어야 행세께나 하는 정치인 소리를 듣는다. 구독자 및 조회 수가 정치인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어버린 세상이 됐다. 유튜브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제치고 정보 유통의 최강자로 입지를 굳히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나라 유튜브 이용자는 약 30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어린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한국인이 유튜브를 이용한다는 얘기다. 개인당 유튜브 시청 시간은 월 평균 16시간을 넘는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난다. 인기로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자신을 홍보하는데 이보다 좋은 노다지는 없다.

대중이 유튜브로 몰리는 이유가 뭘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기존 언론의 콘텐츠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유튜브에는 기존 언론이 다루지 않은 다양한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내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볼 수도 있다. 뉴스의 블루오션인 셈이다. 공급자 측면에선 큰 경제적 부담 없이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어 다른 수단에 비해 가성비가 좋다. 유튜브 정치의 유행은 수요와 공급의 니즈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최근까지 유튜브는 보수의 앞마당이었다. 진보 진영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선점하자 일찌감치 유튜브로 눈을 돌렸다. 지난달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TV 홍카콜라’를 개설, 5주 만에 구독자 20만여명을 확보하는 예상외의 흥행을 거둘 때만 해도 이 등식은 오래 갈 것처럼 보였다. 홍카콜라보다 앞서 선뵌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유튜브 채널 ‘씀’이 죽을 쑤고 있는 터여서 더 그랬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유튜브 정복’ 발언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그리고 예고대로 이번 주 ‘알릴레오’와 ‘고칠레오’가 잇달아 선을 보였다. 초반 흥행은 대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단 1회 방송에 홍카콜라 구독자 및 조회 수를 가뿐하게 추월했다. 알릴레오는 나흘 만에 구독자 56만명, 조회 수 200만명을 각각 넘어섰다. 그는 알릴레오, 고칠레오가 홍카콜라 대항마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세상은 진보와 보수의 유튜브 전쟁 시작이라고 해석한다.

유튜브는 열려 있는 장이다. 누구든 자신의 주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한 무리수가 자주 동원된다. 자극적인 발언과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한 허무맹랑한 주의, 주장이 넘쳐난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개설한 ‘김문수 TV’가 문재인정부의 대표적 블랙리스트 피해자라고 방송한 김정주 전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기술본부장 건이 그런 예에 속한다. 이 내용은 자유한국당 이만희 의원에 의해 지난해 마지막 날 시작해 올해 첫날 새벽까지 계속된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그대로 재탕됐다. 이 의원은 울분을 토했으나 김 전 본부장은 3년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그가 20대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23번인 게 드러나 이 의원은 체면만 구겼다.

이 정도는 약과다. 유튜브엔 온갖 가짜뉴스가 돌아다닌다. 유독 북한 관련 가짜뉴스가 많다. ‘북한군이 5·18에 개입했다’ ‘북한 헬기가 용인에 기습 남하했다’ ‘대북 지원 때문에 지난해 쌀값이 폭등했다’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지령했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대통령 전용기 태극기를 떼어냈다’는 식이다. 19대 대선은 부정선거였고, 정부·여당이 개헌 후 고려연방제를 추진한다는 허무맹랑한 내용도 적지 않다.

상식으론 이해하기 힘든데 가짜뉴스는 점점 기승을 부린다. 유튜브의 파급력, 가짜뉴스의 선정성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대중의 확증편향이 결합하면서 진짜뉴스보다 가짜뉴스를 더 신뢰하는 모순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게 정치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인데 정치권은 오히려 즐기는 듯하다. 아무리 증오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우리 아니면 그들이라는 대립구도가 정치의 보편적 현상이라 해도 사실과 진실에 근거하지 않은 의도적 편가르기는 민주주의를 황폐화시킨다.

정치권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닐지 모른다. 진실 규명이 목적이라면 금방 들통날 가짜뉴스를 제 주장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이용하지는 않는다. 고민하고 싶은 이에게 고민거리를, 울고 싶은 이에게 울 거리를, 욕하고 싶은 이에게 욕할 거리를 주면 된다는 내부자 조국일보 이강희 주필의 궤변을 지금의 유튜브 환경에 적용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애초 이런 목적으로 유튜브 TV를 만든 건지도 모른다. 자신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유튜브 TV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옥석은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짜뉴스가 발붙일 수 없는 토양을 만들 책임이 시민에게 있다. 관심을 가지면 가능하다. 그렇지 않기에 민중을 개·돼지로 여기는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사실과 진실에 근거하지 않은 의도적 편가르기는 증오를 부추기고 민주주의를 황폐화시켜
옥석을 가려 가짜뉴스 발 붙일 수 없는 토양 만들 책임 시민에게 있어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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