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용만 (15) “나라의 재무 행정 맡아줘야겠어요” 대통령 전화

외환은행장으로 88올림픽 도와 은행감독원장으로 일하다가 친정 재무부 11년 만에 재입성

[역경의 열매] 이용만 (15) “나라의 재무 행정 맡아줘야겠어요” 대통령 전화 기사의 사진
노태우 대통령(왼쪽)이 1991년 5월 이용만 장로에게 재무부 장관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는 말이 아니라 숫자로 말하는 사람이다. 신한은행장으로 오기 직전 은행의 총수신고는 5000억원이었는데 내가 근무를 마치고 떠났던 3년 뒤엔 1조7000억원으로 늘었다. 3배 이상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4배로 늘었다. 여한 없이 뛰던 시절이었다.

1988년 2월에 외환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공일 당시 재무부 장관이 추천했다. 민주화 여파로 국회의 국정감사권이 부활했다. 외환은행은 한국은행과 정부가 주식을 가지고 있는 국책은행이어서 국정감사 대상이었다. 재무부 기획관리실장 시절 국정감사를 경험해 보고 의원들과 스킨십을 다졌던 경력 때문에 호출됐다. 민영화를 추진 중인 외환은행의 여러 난제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외환 관련 업무에 특화된 외환은행은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고객을 모셔야 한다’거나 ‘수익을 내야 한다’란 인식이 약했다. 시중은행과 실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직원들의 의식개혁이 먼저였다. 2년여 재직하면서 매주 두 차례 연수원을 빠지지 않고 방문해 의식 개혁을 독려했다.

본점 12층 구내식당에서 한 번에 12~15명씩 책임자를 불러 ‘당신이 행장이면 어떻게 하겠는가’ 묻는 대화 모임을 가졌다. 총 300건 남짓 개선안을 모아 ‘즉시 시정’ ‘연차적 반영’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으로 구분해서 추진했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88 서울올림픽 주관은행으로 성공적 대회 진행을 도울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주님의 이끄심이다. 90년 3월 재무부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정영의 산업은행 총재가 재무부 장관에 취임했다. 그는 나를 곧바로 은행감독원장으로 전보했다. 80년 7월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난 공직으로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재벌들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조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경제는 86년부터 88년까지 연평균 12%의 고성장을 달성하며 이른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다. 89년부터는 경기가 후퇴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고성장의 후유증으로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렸다. 정부에선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부동산 보유액을 늘림으로써 부동산 시장 과열을 주도했다는 인식이 강했다.

은행감독원장으로서 금융기관에 ‘재벌 기업의 보유 부동산을 전산 입력해 이들 기업의 부동산 변동 상황을 관리하라’고 독려했다. 일시에 부동산 매물을 처분하기는 어렵기에 어떻게든 정부와 재계 사이 불협화음을 줄여가며 업무를 처리했다. 눈앞에 다가온 금리 자유화를 위해 미국과 일본의 은행 감독기구를 방문해 장단점을 파악하고 한국에서의 단계적 도입 방안을 마련했다.

은행감독원장으로 분주할 때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 각하 전화입니다. 기다리세요.”

“은행감독원장 이용만입니다.”

“아, 이 원장이오?”

“네, 각하.”

“앞으로 나라의 재무 행정 좀 맡아줘야 하겠어요.”

이렇게 제36대 재무부 장관이 된다. 91년 5월부터 93년 2월까지 재임했다. 언론에선 나의 재무부 장관 기용을 놓고 ‘친정 복귀’ ‘오뚝이 인생’ 등 헤드라인을 달았다. 11년 만의 재무부 재입성이었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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